팔랑팔랑 통 넓은 치마를 입고 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치맛자락이 살랑살랑 움직인다. 납작한 플랫슈즈 아래 흙바닥은 울퉁불퉁하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아이 유치원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영락없는 동네 아줌마 모습. 진정 좋다.
전업주부가 됐다.
육아휴직으로 1년 동안 워킹맘의 삶을 잠시 유예하며 누린 자유는 달달했다. 하지만 곧,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을 놓고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마음을 어렵게 했던 일과 육아, 회사와 가정의 우선순위 문제를 어렵사리 해결하고 나니 홀가분했다.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해묵은 숙제가 사라지니 마음이 가붓했고 일상이 평안해졌다.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들 돌보는 일만 하니 새벽같이 일어나지 않아도 됐다. 널따란 공원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놀릴 수 있었다. 언제든 커피를 마시러 갈 수도 있었다. 물론 아이들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갔을 때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사실을 캐내야 한다는 이유로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취재하지 않아도 됐고 밤늦도록 앉아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됐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엄마의 부재를 힘겨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엄마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먼지 하나 없는 깔끔한 집, 정성 가득 손수 요리한 밥상은 우리 집 풍경과 거리가 멀었지만 현재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다는 게 감사했다.
가장 좋았던 건 아이의 유치원 하원 시간에 맞춰 마중 나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오후 3시. 기사 마감 시간. ‘다다다’ 자판 치는 소리 가득한 기자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미친 듯이 기사를 막기 위해 애쓸 시간이었다. 부장이 전화 오기 전에 막아야 해. 아놔, 취재원 연결은 왜 안 되는 거야. 딱 이 코멘트가 필요한데 누구한테 연락하지. 으, 진작 취재해 놓을 걸. 이거 맞는 말이었나? 그러다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다짜고짜 전화해서 팩트 확인을 했다. "아, 땡큐! 다음에 점심해요~!!" 이리 '똥줄' 타는 시간이었는데 지금 나는 어디? 아파트 단지 입구에 서 있다.
유치원 버스에 내리는 아이 얼굴을 보는 건 그저 기쁨이었다. 버스 창밖으로 엄마 얼굴이 보이면 환히 웃는 아이, 얼마나 좋을꼬. 그래 아들아, 엄마도 좋다. 단 몇 분의 시간, 별일 아닌 듯 하지만 내가 가장 해 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다.
아이는 차로 20분 넘게 걸리는 유치원에 다녔다. 산자락에서 뛰어노는 숲유치원이었다. 어릴 때는 마냥 뛰어놀았으면 해서, 숲에서 건강하게 놀았으면 해서 고르고 골라 보냈다. 말이 20분이지 버스는 오는 길목을 돌고 돌아 다른 아이들을 내려줬으니 큰아이는 40분을 족히 버스를 탔다. 종일 숲에서 뛰어논 아이는 늘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흙 묻은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집 앞에 다 왔을 즈음 깨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떡실신'이 되어서 왔다. 늘 일하던 엄마, 새벽이면 나가서 저녁 되어야 볼 수 있던 엄마. 이제는 동생 어린이집 끝날 때까지 자신이 온전하게 차지할 수 있는 엄마. 그 엄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설렘은 며칠 안 갔다. 졸리고 피곤함을 견디지 못했던 아이는 어느 날인가부터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내게 실렸다.
6살 아이를 안고 아파트 단지를 걸어 들어오는 건 만만치 않았다. 아이는 또래보다 키가 컸다. 잠이 들어 온몸이 축 쳐지면 안기도 버거웠다. 물에 빠진 솜이불이 이렇게 무거우려나. 아파트 단지는 왜 이렇게 넓은 건지. 오래된 단지라 지상으로 차가 다녔다. 겹겹이 주차된 차 사이를 돌고 돌아 복도식 아파트를 걸어 들어오는 길. 현관문을 열고 아이를 내려놓으면 온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하루 이틀, 아이를 품에 안고 들어와야 하는 일이 잦아졌다. 팔랑거리는 치마와 가붓한 플랫슈즈의 낭만 따윈 없었다. 아, 너무 무겁다, 아들. 아파트를 돌아 집으로 겨우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안방 침대까지 갈 힘이 없어 거실 매트에 아이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아이가 눈을 반짝 떴다. 어찌나 약 오르던지, 안고 있던 아이를 바닥에 툭 던졌다. 깜짝 놀라 엄마를 생경하게 바라보는 아들. 믿었던 엄마한테 배신감을 느꼈다는 표정, 갑자기 엄마가 무서워졌다는 표정.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당황한 그 표정. 그저 엄마가 좋아서, 엄마 품이 좋아서 안겨 있었을 뿐인데. 엄마가 이리 화를 내다니.
인간 본능은 모성애를 이기지 못하는 걸까. 힘들어서 화를 내고 보니 눈이 동그래진 아이에게 미안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기분이었겠지. 그 순간, 나는 전업맘의 현실을 깨닫게 됐다. 이제 두 아들을 돌보는 일이 온전히 내 몫이 됐다. 빼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