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 결국 그거였어?"

그녀의 인생극장, 일과 육아 그 갈림길에 서다

by 오르

육아휴직, 일 년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사를 해서 더는 시댁 근처에 살지 않게 됐다. 아니, 이제 부탁드릴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두 손자를 금이야 옥이야 온 마음 다해 돌봐주셨다. 손자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달리 얼굴은 나날이 흙빛이 되어갔다. 힘에 부치신 게 역력했다. 어깨 통증을 호소하셨다. 회전근개파열로 수술을 받으셔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방팔방 아이 돌봐줄 이모님을 찾기 시작했다. 멋진 그녀들의 더 멋진 이모님, 나에게도 그런 이모님을 허락해주세요! 하루에 수십 통 전화를 돌렸다. 어렵게 한 분 면접을 봤다. 마음에 썩 들진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시간은 다가왔고 더 나은 사람을 선택하고 싶다고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그 분으로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돌발 변수가 등장했다.

큰 아이가 다시 밤마다 울기 시작했다. 사그러진 것 같았던 야경증이 고개를 들었다. 난 며칠 전부터 '엄마는 이제 다시 회사로 일하러 가야 한다'고 아이에게 말했다. 여섯 살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조곤조곤, 부드럽게. 내 나름 상황을 아이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다고 했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는 다시 불안해 했다.


어느 날 밤, 아이는 자다말고 벌떡 일어나 엉엉 울면서 가슴을 쳐댔다.


엄마, 엄마! 가슴이 막 타들어가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엄마!!!


아이를 끌어안았다. 온 몸을 들썩이며 힘들어하는 아이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식은 땀이 흥건한 아이를 끌어안고 같이 울었다. 아, 어찌해야 하나. 회사에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나는 우리 회사의 첫 육아휴직 여기자였다. 휴직 후 회사에 돌아가야 다른 후배 여기자들도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을 터였다.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만두면 후배들은... 어찌해야 하나...어떻게 해야 하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쉽게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정확히 수입이 반으로 줄어들 터였다. 그렇다고 쓰임새가 그에 맞춰 바로 줄어들 리 만무했다. 오히려 두 아이를 키우며 앞으로 필요한 돈은 더 늘어날 게 분명했다.


다른 무엇보다 나를 가장 고민스럽게 하는 건 사람들의 평가였다. 벌써부터 그들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결국 걔도 집에 들어앉았어? 좀 다를 줄 알았더니...별 수 없구만." 세상 듣기 싫었다. "오, 역시! 박기자는 좀 다른데~"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박기자는 좀 다른데.


기도했다. 매일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심히 고민스러웠다. 예전에 방영됐던 TV 인기 프로그램 '인생극장'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두 갈림길 한 가운데 서 있는 기분. 여기서 그만 두면...나는?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거지? 돈은?


고민의 늪에 빠져있을 때 한 지인이 내게 말했다. "지금 네가 있어야 할 곳은 가정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이 아쉽겠지만 네가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옆에 있으면서 가정을 먼저 세우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 내가 지금 있어야 할 곳은 집이야.

아이들도, 회사도 모두 내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건 우리 아이들이었다. 회사에선 싫어하겠지만 내 자리는 누군가가 대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는 나여야만 했다.


무척 더운 여름 날이었다. 그날, 그 장면을 또렷이 기억한다. 안방 침대에 누워 아이들 낮잠을 재우고 있었다. 토닥토닥. 남편은 벽걸이형 에어컨 아래 서서 땀을 식혔다. 에어컨 청소를 하고 난 끝이었다.


여보,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겠어요. 회사 그만두려고.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랄 만도 하지. 상황이 힘들어져도 내가 복직한다는 게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그 누구도 내가 회사를 그만 둘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당분간 남편 혼자 생계를 짊어져야 한다.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게다.


"일은 다시 할 수 있을 거야."

우리 아이들이 엄마를 세상으로 내보낼 준비가 되면 언제든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내겐 있었다. 회사에...회사에 이야기 하는 일이 남았다. 데스크와 편집국장을 만나야했다. 해결해야 할 크고 작은 일들이 눈 앞에 지나갔다. 다시 내 삶의 길이 바뀌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순간. 이제 전업맘으로 살아가는군. 마음만은 평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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