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게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잠을 자도 괜찮았다. 두 아들을 양쪽에 끼고 누워있는 게 행복했다. 무엇보다 아침에 발딱 일어나 아이를 매몰차게 뿌리치고 나오지 않아도 되는 게 말도 못 하게 좋았다. 아이와 침대에서 뒹굴뒹굴, 배를 열어젖히고 뒹굴뒹굴. 아이는 어려서부터 내 배 만지는 걸 좋아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 찌찌를 만진다는데 큰 아들은 달랐다. 시도 때도 없이 엄마 배를 '까고' 배를 만지작거렸다. 나도 아이 배를 만지작거렸다. 특히 아이들의 말랑말랑하고 보들보들한 뱃살의 촉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아들, 이제 더 이상 아침에 대성통곡하지 않는구나. 그저 감사했다.
아이들이 집에 엄마가 있는 걸 알고 유치원에 가기 싫어한다는 건 딜레마였다. 하지만 갑자기 육아휴직을 했다고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만 할 순 없었다. 혼돈 속에 있던 집안에 질서를 부여해야 했다. 집 정리를 하고 물건을 버리고. 그렇다고 집이 드라마틱하게 정리되진 않았다. 워낙 살림하던 손이 아닌 데다 아이들의 장난감과 책이 뒹구는 좁디좁은 집은 대략난감이었다. 그래도 시어머니와 이모님이 '어딘가'에 넣어둔 물건을 오랜 시간을 들여 찾지 않아도 됐다.
나 혼자 보내는 달달한 시간
사실, 가장 필요한 건 나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20대 중반, 기자가 되고 싶어 도서관에 틀어박혀 언론고시를 준비했다. 오직 논술, 시사상식, 토익 점수만이 전부였던 시절. 언론사 합격을 하고 '싹수 있는' 수습기자가 되겠다고 발꼬랑내 나도록 뛰어다니던 날들. 결혼, 출산, 그리고 육아. 그렇게 20대부터 기를 쓰고 달려와 보니 서른이 넘었다. 서른에 아이 둘. 남들 눈에는 빠른 속도로 가정을 이루고 지극히 안정적으로 사는 듯 보였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달랐다. 수면 아래에서 미친 듯이 발버둥 치는, 아주 피곤한 백조였다. 대한민국 중산층 이상으로 '있어 보이게' 살기 위해 돈과 성공을 좇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달렸다.
더 늦기 전에 따로 노는 몸과 영혼을 붙들어 앉혀야 했다.
혼자 커피를 마시러 갔고 책을 읽으러 서점에 나갔다. 카트를 끌고 한적한 대형마트를 '우아하게' 걷기도 했다. 유치한 이야기지만 내 차를 몰고 광활한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커다란 카트를 달달달 끌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로망'이 내게 있었다. 반드시 평일 낮에. 무엇보다 시도 때도 없이 교회를 갔다. 오전 여성 예배를 드리러 갔고 새벽을 깨웠다. 때때로 빈 예배당에 앉아 기도했다. 그저 쫓기듯 아등바등 살았던 시간들, 내겐 영혼의 휴식이 더없이 필요했다.
육아의 현실은 결코 달지 않아
모처럼 찾아온 휴식은 달달했지만 두 아들을 보는 게 마냥 즐겁진 않았다.육아 휴직한 엄마가 곁에 있다고 해서 아이의 야경증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우는 아들을 데리고 놀이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백화점 문화센터도 갔다. 옆집 엄마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문센'. 돌아보면 놀이치료도, 문센도 그다지 큰 효과는 없었다. 그저 아이들과 살을 비비며 시간을 보낸다는 게 의미가 컸다.
하루는 큰아이가 유치원 셔틀버스를 타고 깊이 잠든 채 하원을 했다. 아이를 들쳐 안고 아파트 단지를 걸어 들어왔다. 푹 잠들어 몸이 축 늘어진 다섯 살 사내아이를 안고 오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복도형의 구식 아파트를 돌고 돌아 겨우 집에 도착했다. 휴~ 고놈 엄청 무겁네. 아이가 깨지 않게 살살 눕히려는 순간, 아이가 반짝 눈을 뜬다. 요 녀석. 잠든 게 아니었어? 어찌나 약이 오르던지 아이를 거실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아이 눈이 커졌다. 엄마가 그리 화낼 줄 몰랐던 거다. "깼으면 일어나야지!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게 좋았을 게다. 그 시간에 볼 수 없었던 엄마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엄마 품에 안겨 오는 게 얼마나 달콤했을까.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내가 느끼는 육아의 어려움은 현실이었다. 퇴근 없는 육아, 끝도 없는 청소와 빨래, 요리, 설거지. 주부로서 경험하는 피로감이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처음 마음과 달리 두 아들을 향해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장난감 안 치워~?!"
그토록 바라던 전업주부, 육아맘의 삶이었지만 출근하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차라리 밖에 나가 애들 없는 데서 일을 하는 게 몸은 편하겠어. 이래서 남편이 집에 오면 '방전', 출근해서 '충전'이라고 했구나. 내가 집에 머무는 동안 다른 언론사 동기, 후배들이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들썩였다. 이렇게 있어도 괜찮은 걸까. 무엇보다 두 아들을 있는 그대로 품지 못하는 이기적인 내 모습에 좌절감이 들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는 아이들을 향해 괴물같이 소리 지르는 엄마. 시시때때로 프랑켄슈타인처럼 돌변하는 엄마.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는 엄마. 다중 인격의 나를 발견하는 건 괴로웠다.
우리는 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무시한다. - 루크레티우스(로마 시인, 철학자)
돌아보니, 늘 그랬다. 내게 있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지 않고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바라는 삶. 내 손에 쥐어진 건 초라하고 남의 손에 든 떡이 크고 맛나보였던 삶. 상황 자체가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태도가 내 삶을 규정한다는 사실이 비로소 깨달아졌다.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일에서 잠시 떨어져 있던 시간. 그제야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던 자아성찰의 시간이 아픈 아이를 통해 선물처럼 왔다. 온몸으로 두 아들을 키우며 묻고 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