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새벽은 지옥이었다

새벽마다 우는 아이, 나의 큰 아들

by 오르

어느 날인가부터 큰아이가 밤마다 울기 시작했다. 한밤중 자다 말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다. 아이의 표정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무섭다며 손을 휘젓고 덜덜 떨었다. 손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침대 위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다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달래도 보고 안아도 보고 괜찮다고 도닥이기도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다가 순간 진정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잠들었다.


"어제 무서운 꿈 꿨니?"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물어보면 아이는 지난밤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 도대체 왜 그럴까. 이 아이는 뭐가 그리 무서운 걸까.


이유 없이 밤마다 울부짖는 큰 아이

이런 일이 반복됐다. 큰아이가 울며 날뛰면 잘 자던 둘째도 놀라 깨서 울었다. 적막한 새벽, 순식간에 집안이 아수라장이 됐다. 피곤에 절은 우리 부부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해봐도 안 되자 남편은 큰 아이를 침대에 집어던졌다. 비몽사몽간에 저러는 것이니 잠이라도 깨라는 심산이었다. 그러면 아이는 놀라 더 크게 울었다. 자지러지듯 우는 큰 아이를 달래고, 분노가 오르는 남편을 말리고, 둘째가 깰까 노심초사하며 새벽을 보냈다. 매일이 지옥이었다.


그 당시엔 모든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돌아보면 우는 아이에 대해 분노를 쏟아낼 일은 아니었다. 아이를 달래야 했다. 그저 안고 달래고 품는 일이 무한 반복된다고 해도 그래야 했다. 그러고 난 후 아이가 울부짖는 일이 잦아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말, “뚝! 울지 마! 뭘 잘했다고 울어!!” 옛날 어른들이 일단 아이의 울음을 그치려고 했듯 우리도 그렇게 아이를 윽박지르고 있었다. 울고 싶은 마음에 잘잘못이 어디 있을까. 울고 싶은 감정이 잘못된 건가. 아이라고 그렇게 밤마다 울고 싶을까. 아이는 그 순간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상황 속에 갇혀 있었을까. 우리는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night-terrors https thechart.blogs.cnn.com.jpg https://thechart.blogs.cnn.com/2011/02/01/get-some-sleep-night-terrors-explained/comment-page-2/


엄마의 부재가 그저 불안했다

당시 난 세계 뉴스를 다루는 국제부 근무였던 지라 오전 6시 30분까지 출근을 해야 했다. 아이는 갈수록 엄마의 출근에 불안증세를 보였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가지 말라고 엉엉 우는 일이 매일이었다. 어찌나 울었던지 목이 늘 쉬어 있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아이는 내가 나올 때까지 문 앞에 앉아 기다렸다. “엄마, 끙아 몇 번 남았어요?” “엄마, 씻어요? 언제 나와요?”


아이는 엄마만 찾았다. 만날 안아달라고 했다. 분리 불안이었다. 둘째가 태어나자 더 심해졌다.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가 있는 동안 난 큰아이가 가장 많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조리원으로 부를 수도, 전화할 수도 없었다.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더 보고 싶어 울 거라고 어른들이 말리셨다. 만날 우는 아이를 바라보던 마음이 힘들었던지라 그저 아이의 안부만 가족들에게 물었다. 배가 잔뜩 불렀던 엄마. 그 속에 동생이 있다고, 곧 선물처럼 나올 거라고 말했지만 갓 두 돌이 된 아이가 얼마나 그 상황을 이해했겠는가. 그리고는 2주 동안 엄마가 사라졌으니 아이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동생이 태어난다는 건 남편을 빼앗긴 조강지처의 마음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이에겐 수면장애뿐 아니라 여러 불안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기에 이르렀다. “00 어머니, 원장이에요. 혹시 00가 집에서 특이한 행동을 보이진 않나요?” 그제야 알게 된 사실들. 돌 전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져야 했던 큰아이는 예민하기가 하늘을 찔렀다. 재워서 눕히면 깨고, 달래서 눕히면 또 깨는 일이 반복되자 담당 선생님은 아이를 거의 하루 종일 안고 있었다고 했다. 원장은 내가 걱정할까 봐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비로소 큰아이가 얼마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게 됐다.


밤의 공포, 야경증

밤마다 큰아이로 인한 공포감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몰랐다. 주변에 슬쩍 그런 경우를 물어보면 처음 듣는다는 눈치였다. 애들은 가끔 그러다 괜찮아진다고만 했다. 소아과, 한의원에서도 뾰족한 답을 주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야경증'이라는 것을. 아주 우연히 본 책에 등장한 낯선 단어, 야경증.


야경증 [night terrors, 夜驚症]. 자다가 갑자기 깨어나 놀란 것 같이 불안상태로 되어 울부짖거나 뛰어다니다가 진정되어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 아침에는 이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증상이 너무나 익숙했다. 큰아이 행동과 정확히 일치했다. 2~8세의 신경질적인 소아에게 많다고 했다. 원인을 명확히 찾긴 힘들었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경우 그럴 수 있다는 설명이 내 눈에 꽂혔다. 불안해서 자꾸 엄마에게 안기려 한다는 거였다. 숙박을 해야 하는 모둠활동을 피하려고 한다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교회 캠프에 가서 1박 하는 것을 싫어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처음이라 낯설어서 그럴 거라며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보내려 애썼다. 엄마 없이 자기 싫어 안 가겠다는 아이가 내겐 그저 떼쓰는 거라고만 여겨졌다. 다른 아이들 다 하는 일을 우리 아이만 못하는 것 같아 걱정됐다.


야경증에 시달리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지 말아야 했다. 침대로 던지는 건 더더욱 하지 말아야 했다. 방 밖으로 뛰쳐나갈 때는 다치지 않도록 아이를 지켜야 했고, 조용히 아이를 달래며 침대로 돌아오게 해야 했다. 잘 때 적절한 방 온도를 체크해야 했고, 아이가 어떤 음식, 특히 항히스타민제를 먹을 때 증상이 심해지는지를 관찰해야 했다. 주변 어른들에게 아이의 증상을 숨길 게 아니라 자세히 설명해줘야 했다. 아이는 정작 자고 일어나면 괜찮으니 아이의 야경증에 과민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미인 나 역시 걱정하고 불안해하기만 했다. 불안함이 아이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럼에도 '분리불안'이라는 말을 내 아이에게 사용하기 싫었고, 정서적으로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왜 내 아이만 그리 유난스럽게 힘들어하는지 화가 났다. 아이는 내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엄마, 난 엄마가 필요해요.



더 이상 그대로 둘 순 없었다.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했다.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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