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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Jul 21. 2021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게으름

이토록 나른하다니...


느릿느릿. 거북이가 따로 없다. 움직이는 게 심히 귀찮다. 한 마디로 게으르다. 요즘 내 상태가 '게으름'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사전을 뒤졌다.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정답이다.


한껏 게을러지고 있다. 잠자는 시간이 늘었다. 진짜 몸이 잠을 원하는 걸까, 나태함이 잠을 부르는 걸까, 아니면 더워서 그런 걸까. 새벽 5시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만 해가 중천에 뜨면 몸이 견뎌내질 못한다. 비실비실 병든 닭처럼 밥 먹다가도 졸리고, 책을 읽다가도 스르르 눈이 감긴다. 마당에 배를 깔고 누운 개처럼 졸음에 겨워 눈만 꿈벅인다. 꼭 해야 할 일만 처리하고는 빈둥댄다. 눈 주위가 거무튀튀한 나무늘보 같다.


할 일이 많아서 일을 줄였다. 책 쓸 시간이 없어서 시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 틈으로 나태함이 슬금슬금 파고들었다. 의무감이 없으니 이리저리 빈둥거린다. 이토록 타성적인 인간이었단 말인가. 그렇다고 마음마저 느긋해진 건 아니다. 머릿속에 해야 할 일이 테트리스 조각처럼 우두두 떨어진다. 그걸 해소하려면 빈칸 없이 차곡차곡 쌓아가야 하는데 어디서 왔는지 모를 게으름이 자꾸 빈칸을 만든다. 곧 '게임 오버'라는 경고문이 뜰 것만 같다. 몸은 한없이 게으르면서도 마음은 조바심이 인다.


게으른 삶의 방증은 글이다. 글을 안 쓴다. 블로그도, 브런치도 개점휴업이다. 그나마 내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 <라라프로젝트>에서 멤버들과 매일 함께 쓰는 일만 한다. 독서모임을 열기 위해 책을 읽는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비우고 정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매일 15분 동안 3가지 버리는 일만 겨우 한다. 의지로 이겨낼 수 없을 땐 반드시 해야 하는,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밀어 넣으라더니 그 말이 꼭 맞다.


왜 갑자기 이토록 나른해졌을까. 여전히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자니 슬며시 자괴감이 고개를 든다. 가만 있자. 그렇다고 내가 논 건 아닌데. 잠시 멈춰 돌아본다. 코로나 상황에 따라 널뛰는 아이들 등교 일정에 맞춰 성실하게 라이드를 했고, 글쓰기 강의, 코칭을 하며 바삐 지냈다. 지난 6개월 동안 읽고 쓰고 피드백하는 일에서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다. 기자였을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글에 파묻혀 지냈으리라.


© kellysikkema, 출처 Unsplash


요즘 내가 가장 부러운 이는 둘째 아들이다. 어쩌면 그리 에너지가 넘치는지 쉼 없이 떠들고 공부하고 운동한다. 엄마 심부름도 하고 틈틈이 형 공부 잘하나 간섭도 한다. 아빠가 퇴근하면 강아지처럼 뒤를 졸졸 좇아다니며 하루 일과를 몽땅 보고한다.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지 내게도 그런 화수분 같은 발원지가 있었으면 싶다. "엄마도 그냥 자요. 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 당기면 먹으면 되죠." 인생의 답은 참으로 단순하다.


쓰지 않으니 읽기라도 해야 한다는 심산으로 펼친 책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우아한 글을 쏟아내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인기 작가들도 슬럼프를 겪고 장벽에 부딪치며, 아기 기저귀를 갈고 아이들을 통학시키고 가끔은 놀랍게도 옆집에 살기도 한다." 


잘 나가는 사업가가 말한다. "슬럼프는 친구예요. 전 어제도 왔는걸요." 작가들의 유려한 문장이 아닌 벌거벗은 듯 솔직한 속내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의 빈틈에서 위로를 얻는다. 오늘 내 고백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며 쓴다. 쓰면서 또 한 번 일어난다. 슬럼프든, 번아웃이든 그저 거쳐가는 평범한 일상이다.


친구야, 그렇다면 조금만 놀다 느그 집에 가거라. 앞으로 너무 자주 찾아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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