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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Jul 27. 2021

드디어, 윗집이 이사 갔다

층간소음, 분노 유발자들이 사라지는 방법


아침 댓바람부터 시끄럽다.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윗집 사람들 새벽부터 일어났나 보다. 이젠 하다 하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새벽잠을 깨우는구나. 가뜩이나 더운 아침, 큰 소음까지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관리사무소도 근무를 시작하기 전, 부탁을 가장한 항의 전화도 할 수 없다. 당최 저들은 무슨 생각으로 저리 하는 걸까.


엄마, 윗집 이사 가나 봐요!



둘째가 나를 부른다. 설마, 진짜? 이삿짐 트럭 사다리가 우리 집 바로 위에서 멈춘다. 그래서 아침부터 쿵쾅거렸군. 하여간, 가는 날까지 매너 하고는. 이사 간다고 미리 귀띔해주면 좀 좋을까. 하긴 나도 이사 가는 날 아랫집에 먼저 인사를 전한 적이 없다. 미운 사람은 뭘 해도 밉다. 오늘은 봐주자. 드디어 가는구나!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우리가 지금 집에 이사 온 건 8년 전이다. 에너지 넘치는 아들 둘을 키우는 터라 처음에는 윗집이 내는 층간 소음을 묵묵히 참았다. 우리라고 아랫집에 폐를 끼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아이들은 아무리 조심시켜도 발소리가 바닥을 흔들 때가 있다. 남편과 나는 두 아들에게 까치발로 걸어 다니라고 했다. 조금만 시끄럽게 해도 "쿵쿵! 또, 쿵쿵! 조용히 해야지!"라며 단단히 주의를 줬다. 


아무리 조심해도 우리와 아랫집이 느끼는 건 다를 수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집 어른들을 보면 용기 내서 인사를 했다. "저희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지요?" 그럴 때마다 어르신들은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하나도 안 시끄러워요. 애들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요." 아이들은 번갈아 편지도 썼다. "저희가 시끄럽게 했다면 죄송해요." 다음 날 편지함에는 정자체로 반듯하게 쓴 편지가 들어있었다. "넌 커서 큰 사람이 되겠구나. 괜찮으니 동생과 사이좋게 마음껏 뛰어놀아라." 형이 받은 답장에 고무된 둘째도 며칠 후 편지를 썼다. 이번에는 곶감도 직접 갖다 드렸다. "딩동!" 그 다음날 아랫집 할머니는 피자를 건네주셨다. 입이 헤벌쭉 벌어진 두 녀석은 이후로 시키지 않아도 발걸음을 조심했다. 아랫집 할아버지를 뵐 때마다 뛰어가 인사를 했다.


윗집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부모가 조심시켜도 무의식 중에 튀어나오는 아이의 야성일 거라고. 알지만 차마 미안해서 우리에게 말도 못하는 거라고. 인지상정,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을 테니까. 우리도 아랫집처럼 마음씨 좋은 이웃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쿵! 쿵! 쿵! 새벽에도 쿵! 쿵! 쿵! 쿵! 아이 발소리가 아니었다. 윗집에는 코끼리 두 마리가 살았다. 낮에는 '다다다다', 새끼 망아지가 활약을 했다. 문을 닫고 사는 겨울에 소음은 더 커졌다. 남에게 싫은 소리 듣기도, 하기도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그저 참았다. 저들이 절로 알기를 바랐다. 한 번은 낮에 윗집 아이가 정신없이 뛰기에 참다 참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했다. 


우리는 딸을 키우는데요.


윗집이 했다는 말에 기가 찼다. 그리고 며칠 후, 저녁 늦은 시간, 천장이 심히 요동쳤다. 잔뜩 열 받아 어쩔 줄을 모르는 날 두고 남편이 참다못해 인터폰을 직접 눌렀다. "아, 저희가 손님이 와서요. 아이들 주의시킬게요."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그날 밤, 우리 가족은 천장을 드릴로 뚫어내는 듯한 소음에 진저리를 쳤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얼굴도 잘 알지 못하는 윗집 사람들이 너무 미웠다.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마음이 괴로웠다. 저들은 자신들이 '분노 유발자'가 된지도 모를 터였다.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미친 듯 두드렸다. 내 글쓰기 실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야. 내가 쓴 편지를 본 남편이 바통을 받았다. 내 글이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며 '팩트' 중심으로 다시 정리했다. A4 세 장을 빼곡히 써서 우편함에 넣었다. 다음 날, 윗집 여자는 그제야 사과의 편지와 함께 롤케이크를 문 앞에 두고 갔다. 직접 얼굴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그 마음이 고마워 난 쿠키 박스를 윗집 문고리에 걸어두고 내려왔다. "답 주셔서 감사해요. 딸아이에게 주세요." 하지만 그 후에도 윗집은 간헐적으로 본인들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횟수가 줄긴 했지만 성향이 바뀌진 않았다. 이른 아침, 늦은 밤, 시간에 대한 개념은 여전히 없었다. 그저 바랐다. 이사나 가라, 제발.



여보, 윗집 이사 가요.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날이 우리에게도 오는구나. 그런데 마냥 기쁘지가 않다. 우리보다 먼저 윗집에 살고 있었던 그들. 천 년 만 년 살 것 같더니 왜 이사를 갈까. 어디로 갈까. 쓸데없는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더 좋은 데로 갈까, 집값을 생각하고 갈까.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든다. 기껏 적응시켜 놨는데 이제 가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럼 누가 이사오려나. 가도 걱정, 안 가도 걱정이다.


착하고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는데 행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올까 봐 걱정부터 앞선다. 입 밖으로 내뱉으면 진짜 그런 '진상'이 올까 싶어 말도 못 한다. 그저 마음 깊이 바라고 기도할 뿐이다. 부디 새로 이사 오는 윗집 사람들은 개념을 장착한 선량한 사람들이기를, 조용하고 예의 바르며 격 있는 이들이기를. 그러겠지.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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