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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Aug 12. 2021

중요한 건 몸무게가 아니야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대로 살려면


체육시간이 제일 싫었다. 

다른 과목은 이럭저럭 하겠는데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뚱아리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체력장만 하면 초라해졌다. 공던지기 기록 13미터, 매달리기 10초. 괴성을 지르며 있는 힘껏 공을 던졌건만 늘 공은 코 앞에서 무심하게 '똑' 떨어졌다. 땅이 파이도록 체중을 실어 제자리 멀리 뛰기를 하면 체육선생님이 소리를 쳤다. "이것아, 엉덩이가 너무 무겁잖어!" 100미터 달리기만큼은 그저 작년보다 나아지기만을 바랐다. 달리기 잘하는 친구에게 배운 대로, 손을 앞뒤로 잽싸게 움직이며 달리면 바람이 귓전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슝슝. 이보다 더 빠를 순 없어. 이번엔 기록 경신인가. "19초!"


어려서부터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오래도록 하는 일은 잘했다. 

가만히 앉아서 책 읽고, 피아노 연습하고, 붓글씨 쓰고. 반면 민첩성, 순발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엄마는 왜 나를 그 흔한 태권도 한 번 보낸 적이 없을까. 피부가 약해, 물이 무서워 수영도 못 배웠다. 소싯적 좁은 골목에서 개떼처럼 몰려다니며 축구는 곧잘 했다. 어느 날 누군가 세게 찬 공에 가슴을 맞은 이후 굴러가고 날아가는 물건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나마 버티는 건 잘해서 오래 달리기만 1등급이었다. 다만 마지막 바퀴를 뛰고 나면 운동장에 실신하듯 쓰러졌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시험기간에는 밤을 꼴딱 잘 새웠고, 걸어서 배낭여행도 잘 다녔다. 유연성도 나쁘지 않아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일하면서 두 아이도 순풍 낳았다. 엄마 껌딱지 큰아들을 들쳐 안고 걸었다. 둘째를 뱃속에 품었을 때도 큰 녀석을 안아줬다. 아들 둘과 날이면 날마다 산행을 했고 놀이터에서 살았다. 물론 해가 기울면 에너지도 떨어졌다. 밤마다 두 아들 책을 읽어주면 졸음에 겨워 혀가 말려들어갔다. 책에 머리를 처박으면 아이들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


© purzlbaum, 출처 Unsplash


운동을 해야 했다. 

동네 헬스클럽, 문화센터, 여성회관에 등록했다. 한 달 이상을 넘기지 못했다. 운동을 해야 할 이유는 명백했지만 운동을 할 수 없는 이유 또한 수 백가지였다. 주차가 번거로워서, 기존 회원들의 텃세가 심해서, 좁은 공간에 수강생이 너무 많아서, 늦게 가면 내 자리를 빼앗겨서, 나와는 안 맞는 운동이어서, 피부가 약해서, 혼자 가기 심심해서, 강사 실력이 별로여서, 너무 비싸서.


얼마 전부터 어깨가 고장 났다. 골반도 틀어져서 바지를 입으면 한쪽만 들려 올라간다. 허리를 돌리면, 무릎을 굽히면 소리가 난다. 뚝뚝. 오래 방치돼 아귀가 맞지 않는 찬장 문 여는 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내 몸에서 나기 시작했다. 조금만 무리하면 다음 날 맥을 못 춘다. 밤마다 침대 위로 장렬히 전사한다. 머릿속에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넘쳐나는데 도무지 세상으로 나오지를 못한다. 아이디어가 솟구쳐 메모한 프로젝트만 수두룩하다. 시작해볼까 싶으면 이미 하고 있는 일 마무리하느라 하루가 다 가버린다. 글 쓰는 일과 관련해 펼칠 수 있는 일이 참 많은데 감당할 자신이 없다. 아니, 에너지가 없다. 


만년 열혈 청년인 줄 알았다. 나이 마흔 넘어가면 느낌이 다르다고. 남편이 그토록 '난 이제 꺾였어'라는 말을 달고 다닐 때 남 일로 여겼다. 왜 그리 늙어가는 일을 한탄하나. 난 달라. 


허나, 몸은 정직하다. 가만히 앉아 같은 자세로 있으니 몸이 굳어간다. 병원에선 직업병이란다. 이대로 있다가는 21세기 대한민국 글 쓰는 이의 전형으로 화석이 될 것 같다. 기자 선배 하나는 미친 듯 마라톤을 했다. 늙어 죽도록 술을 먹고 싶어서랬다. 죽기 전까지 글을 쓸려면, 오래도록 일하고 싶으면 운동을 반드시 해야 할 때가 내게도 왔나 보다. 아, 이제 물러설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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