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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Sep 19. 2021

추석 연휴 대형마트를 가는 자의 태도

명절을 앞둔 대형마트는 붐빈다. 추석 연휴 첫날 아침, 마트를 향하는 길은 막히고 주차는 어려우며 장 보고 나오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늘 이번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코로나 시국 아닌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간만에 모이는 게 명절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말라고 하니 분명 마트 풍경도 예년과 다를 거였다.


마트 개장을 앞두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다. 눈이 부시구나. 모처럼 라디오 클래식 방송에 주파수를 맞추고 흥얼흥얼 따라 부른다. 옆동네 창고형 대형마트로 가는 길은 원래 차량이 많다. 늘 그렇듯, 그 구간만 지나면 곧 달리리라, 느긋하게 신호를 기다린다. 마트까지 2킬로미터 남았다.


길모퉁이를 도는데 어라, 이게 뭐선 일이고. 마트를 향하는 2차선 도로는 이미 주차장이다.


추석에 다들 집에만 있는다더니. 이건 뭐지?




당황한 마음에 주절주절 읊어대는 내게 남편이 말한다. "다 똑같은 마음이지. 이번엔 사람 좀 없을 거라고. 연휴 첫날 아침, 일찍 빨리 장 보고 쉬겠다고. 그거 아니겠어?"


나도 동일한 입장이면서 나보다 일찍 나와 마트까지 늘어선 차들이 원망스럽다. 그저 앞차가 움직여주기만을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최선을 다해 인내하는 것뿐. 잡티 하나 없는 채도 높은 파란 하늘, 하얀 구름이 명화 속 풍경처럼 한가롭게 흘러간다. 구름 가는 속도만큼이라도 좀 움직였으면 좋으련만, 이놈의 차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엉금엉금,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마트에 다다르겠지. 입을 앙 다물고 참고 있는데 마트가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슬금슬금 끼어드는 얌체족들도 하나, 둘 등장한다. 이제껏 내가 기다려서 여기까지 오느라 걸린 시간이 얼마인데 감히! 세상 얄미운 새치기차들에게 양보할 마음이 내겐 없다.


끼어드는 차에 내가 항상 인색한 건 아니다. 차 뒤꽁무니에는 운전자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어서 어쩔 수 없이 차선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 그 민망함이 눈에 보인다. '죄송해요. 처음 오는 길이라 차선을 잘못 탔어요.', '아, 여기서 꼭 이 차선을 타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미안합니다.' 문자 메시지에 뜬 이모티콘처럼, 눈치를 보느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쭈뼛쭈뼛 난감해하는 운전자의 얼굴을 보는 듯하다.


낯선 초행길이어서 어찌하다 보니 밀려 밀려 여기까지 왔는데 이젠 정말 차선을 바꿔야 할 경우, 이번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수십 킬로미터를 내리 달려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나라고 없었겠는가. 비상등을 켜고 가만 기다리는 차를 보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기꺼이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선다. 제대로 차선을 탄 운전자의 여유로움을 풍기면서. 예전에 운전 미숙으로 차선을 변경하지 못해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진짜 그랬는지,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정말 본의 아니게 부산까지 달릴까 싶어 나 역시 그런 상황이 되면 식은땀이 흐른다.


하지만 내 앞자리가 자기 것인 듯 마구 밀고 들어오는 차는 다르다. 마치 새치기가 당연하다는 듯, 끼어드는 게 훌륭한 운전 실력과 비례한다는 듯 뻔뻔하게 달려와 쓱, 내 옆에 바짝 붙어대는 차를 보면, 고놈 참 씸하다. 오기가 난다. 나도 여기 오기까지 지금 30분이 넘게 걸렸다고요. 내 뒤로 선 수많은 차들은 어쩌고요.


마트 가는 길, 천연덕스럽게 들이밀던 대형 SUV가 딱 그랬다. 덩치를 봐도 작은 내 차정도는 얼마든 밀어낼 수 있다는 심산이었는지 아무렇지 않게 차 앞머리를 들이미는데 부아가 나서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이것 보시라. 나도 운전 좀 한단 말이지. 내가 절대 내주나 봐라. 누가 이기나 보란 듯 움찔움찔 엑셀과 브레이크를 교묘하게 밟으며 앞차 꽁무니에 바짝 붙는다. 기세 좋게 들이밀던 깡패 같은 시꺼먼 SUV, 결국 멈춰 선다. 음하하, 나의 승리다.


어렵사리 주차장에 들어섰다. 그게 끝이 아니다. 이제 주차 자리를 찾아야 한다. 널따란 마트 안, 카트를 밀며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명절 전 대형마트에 가면 마음 상하는 일이 한 둘이 아니다. 뒷사람 동선은 생각지도 않고 복도 한가운데 커다란 카트를 덩그러니 두고 물건 고르러 가는 사람, 급한 마음에 카트를 마구 밀다가 내 뒤꿈치를 치는 사람, 계산 후 물건을 담고 값을 치르는데 빨리 하라고 시위하는 듯 옆에 바짝 붙어 쳐다보는 사람.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장을 보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물건을 싣고 다시 출구로 차 머리를 들이밀어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집에서 나선 지 3시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 장만 봤을 뿐인데 추석 준비를 끝낸 듯 정신이 혼미하고 온 몸이 노골거린다.


한가위만 같아라. 어렵던 시절, 오곡백과가 넘쳐나는 추석만큼 풍성한 시기도 없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추석이면 둥실 떠오른 보름달마냥 사람들 마음도 여유롭고 풍요로웠을 거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제 장 보러 다녀온 일이 불현듯 떠오른다. 난 좀 더 관대할 순 없었을까. 자리를 내주지 않겠다고 기싸움을 하던 게 부끄러워진다. 스스로 찾는 변명의 말. 결국 태도의 문제였어. 끼어들려던 그 차의 태도. '애티튜드'가 괜찮았으면 양보했을 거라고.


우린 상대의 태도에 따라 언행이 달라지는 경험을 종종 한다. 미안해하고 힘들어하는 사람 앞에선 절로 마음이 부드러워져 도와주기도 하고 양보도 하지만, 겸손이라곤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안하무인의 사람 앞에선 나 역시 '앵그리버드'처럼 눈에 쌍심지를 켜게 된다. 연로한 할머니가 지친 표정으로 앞에 서면 어렵게 차지한 지하철 자리라도 기꺼이 내어드리지만, "내 앉을 거요!"라며 반쯤 내려간 내 엉덩이를 밀쳐내는 중년 아저씨에겐 결코 엉덩이 싸움에서 질 마음이 없다.


게다가 내 마음이 급하면 상대의 태도에 더 예민해진다. 결국 내 마음가짐, 내 태도다. 상대에 상관없이, 주변이 어떠하든지 상냥하고 친절하고 한결같이 너그러운 사람이 되려면 내 마음이 여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모든 상황이 내 계획처럼 이뤄질 수 없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코로나 추석 연휴 첫날은 당연히 여유로워야 하며 나의 장보기는 한치의 착오도 없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건 나의 바람이었을 뿐, 꼭 그래야 하고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10분 먼저 나섰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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