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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Sep 29. 2021

일흔넷 친정아빠의 플레이팅 도마

친정 아빠는 솜씨가 좋았다. 연필 몇 번 쓱쓱 오가면 그림이 나왔다. 필요한 건 무엇이든 뚝딱뚝딱 잘 만들어냈다. 엄마가 냄비 둘 곳이 부족하다고 하면 수납장을 짰고 방바닥이 불편하다면 침대를 만들었다.


어릴 적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 나는 미술 과제가 나올 때마다 아빠를 졸랐다. 매정한 아빠는 절대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네 숙제인데 왜 아빠가 그려주냐? 점수를 못 받아도 네가 그려야지." 좋은 성적을 받고 싶었던 나는 아빠가 야속했지만 아빠는 거듭된 내 부탁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올해 일흔넷이 된 아빠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 공부 잘하는 큰아들에게 기대가 컸던 할아버지는 아빠가 우리나라 최고 국립대를 가기 바랐다. 손재주가 좋았던 아빠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완고한 할아버지를 졸라 미술을 전공하겠다고 나섰지만 낙방했다. 대한민국에 미술대학이 거기 하나뿐인가. 재수해서 다른 미대라도 갔으면 좋으련만, 아빠는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재수를 하고도 낙방을 한 건지, '그 대학' 아니면 가지 말라고 할아버지가 못을 박았던 건지는 알 수 없다. 여기까진 내가 엄마에게 들은 아빠의 이야기다. 미대를 가지 못한 게, 아니 대학을 가지 못한 게 아빠의 한이 됐는지는 모른다. 다만 내 나이 마흔 넘도록 아빠 입을 통해 대학 진학과 재수생활의 스토리를 들은 기억은 없다. 아빠는 그 이야기만큼은 직접 하길 꺼려했던 느낌만 남아 있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 입시에 목매던 난 내신을 잘 받고 싶어 아빠에게 다시 한번 앓은 소리를 냈다. 시험공부도 해야 하는데, 그려가야 할 미술 과제가 있었다. 옆에서 징징거려도 아빠는 요지부동이었다. "네가 그리라니까!" "칫, 아빠는 금방 그리면서 그것도 안 그려주구!!"


늦도록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아무리 애써도 선생님은 내게 야박한 점수만 주는데 어찌 그리노.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책상 위엔 완벽하게 색칠된 그림이 놓여 있었다. 아빠였다. 누가 봐도 이건 내 작품이 아니었지만 날 위해 그림을 그려준 아빠의 마음에 내심 놀랐다. 고지식할 정도로 옳고 그름이 분명한 아빠는 자신의 신념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 이렇다 할 표현조차 하지 않던 아빠, 대쪽 같던 아빠도 큰딸의 애원에 못 이기는 척 눈을 질끈 감았던 듯싶다.


추석 연휴, 몇 달만에 친정에 내려갔다. 콩나물처럼 쑥쑥 자란 손자들을 보고 아빠는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집안 여기저기 원목 제품이 보였다. 아빠는 요즘 목공예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책이 쓰러지지 않게 만든 선반, 앙증맞은 소반, 마스크 걸이, 정리함까지, 상점에서 만든 물건처럼 마감이 야무진 게 모두 아빠 작품이었다.


너 필요하면 가져갈래?


아빠가 갑자기 도마를 들고 나왔다. 요즘 SNS에 자주 등장하는 플레이팅 도마.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고 양쪽 끝에 철제 손잡이가 제대로 달렸다. 어찌나 공을 들였는지 도마면이 유리처럼 반들반들 매끈했다. "내가 빼빠질을 2시간이나 한 거다. 거기 있는 젊은 엄마들보다 내가 더 잘했다고 선생이 그러더라." 아빠는 거친 것, 중간 것, 고운 것 3단계에 걸쳐 2시간 동안 쉼 없이 사포질을 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친정 아빠가 손수 만든 나무 도마


옆에 있던 동생에겐 말도 않던 도마를 아빠는 큰딸인 내 앞에서 슬며시 내보였다. 호주산 원목으로 만들었다는 도마는 시중에서 수만 원대에 판매하는 것 못지않았다. 동생이 눈독 들이기 전에 냉큼 집어 들었다. "아빠, 이거 제가 가지고 갈게요!"


집에 와서 도마를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니 더 탐스럽다. 평소 예쁘게 차려 먹는 것도, 깔끔하게 정리된 것도 좋아하지만 실상 그러지 못하는 나는 플레이팅에도 그다지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맛있게 많이 먹고 쉬자는 마음에서다. 요즘엔 도마가 눈앞에 보이니 뭐든 가지런히 올려두고 사진부터 찍는다. 빵을 먹을 때도, 스테이크를 구울 때도 우리 가족은 도마부터 찾는다.



어릴 적 아빠는 무서웠다. 잘한다는 말보다 잘못한 걸 지적하고 혼냈던 기억이 더 크다. 대쪽같이 곧은 아빠가 부담스럽고 싫은 적도 있었다. 아빠가 조금 더 유연했다면 엄마가 편하게 살지 않았을까, 우리가 더 여유롭게 지내지 않았을까. 어린 마음에 원망했던 적도 많다. 내게 사랑한다는 말도 그다지 하지 않았던 아빠. 아빠는 어쩌면 날 생각하며 이걸 만들었으려나. 소나무향이 솔솔 피어오르는 도마를 다시 만져본다. 어찌나 정성을 다해 사포질을 했는지 보들거리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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