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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Nov 05. 2021

전업주부의 자기소개는 왜 초라할까

직업, 직함 빼면 말할 것 없는

큰아이 여섯 살 때, 난 '전업 주부', '전업맘'이 되기로 했다. 엄마의 부재에 분리불안을 호소하는 첫째를 위한 결단이었다. 회사를 그만뒀지만 한동안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면서 '기자' 타이틀은 유지했다. '워킹맘'과 '전업맘' 사이에 어정쩡하게 보낸 세월이 수년, 그래도 내 주된 역할은 '엄마'였다. 누구 엄마로 불리는 것도, 아이 친구 엄마들, 선생님들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내겐 새로운 기쁨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됐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까, 오직 그것만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생애 처음으로 '독서모임'이라는 걸 신청했다. '코로나'로 세상이 바뀐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일을 알아서 하게 되니 더는 내 손이 필요하지 않았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평소 관심도 없었던 자기 계발서를 읽는다는데 이게 도움이 될까, 쓸데없는 짓 하는 것 아닐까, 책을 혼자 읽으면 됐지 뭘 또 모여서 읽는다고. 머릿속에선 또 다른 내가 맞서 태클을 걸었다. 고작 한 달짜리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면서 난 회사를 그만둘 때만큼 용기를 끌어모았다.


마음을 먹고 나니 잘 해내고 싶었다. 제한적으로 열리는 오프라인 모임도 있다는데 거기도 가 봐야 할 것 같았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가 밀려왔다. 갑자기 기자 시절, 모 대형은행 홍보팀장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자들이 일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았다가 다시 일하러 나오는 게 왜 어려운 줄 아세요? 막상 일할 곳이 생겨도 용기가 나지 않는대요. 불러주는 곳이 있어도 다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두렵다고, 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회사를 다시 나가는 일도 아닌데, 난 작은 독서모임을 참여하는 데조차 이미 동일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렵사리 모임에 참석했다. 구석 자리에 앉아 분위기 파악만 하고 오리라 했는데 자기소개를 하란다. 이런, 산 너머 산이다. 생각지도 못한 자기소개에 걱정이 앞선다.  평소 말을 못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바들바들 떨리면서 숨이 턱 막혔다. 사람들 입에선 화려한 단어들이 쏟아진다. "기업 강의 15년 차 강사예요. 청와대를 비롯해 다양한 기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어요." "000에서 해외법인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 년에 10억 넘게 벌었는데 갑자기 왜 사는가 싶어졌어요. 돈은 벌만큼 벌었고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왔어요."  


그들의 자기소개에는 직업과 직함이 있었다. 내겐 둘 중 하나도 없었다. 아니, 현재 직업은 전업주부. 내가 그토록 원해서 선택한 일,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내 일. 그런데 그 말을 꺼내자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전 000엄마입니다." 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나서 이렇게 말할 땐 위풍당당했는데, 여기서는 차마 이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000입니다. 전업주부예요.



누가 건드리면 긴장돼서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는 나 자신이 안쓰러웠다. 순간, 나도 모르게 뒷말이 이어 나왔다.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었고요." 평소 잘 꺼내지도 않는 '전직'을 챙겨 넣었다. 아, 내가 정말 내세울 게 없구나. 게다가 별 것 아닌 이야기까지 부풀려 덧붙였다. "지금은 혼자 글을 쓰고 있어요."


당시 난 '기자'라는 경력을 말하기 꺼려했다. 기자 시작할 때 다부지게 가졌던 사명감을 현실에서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던 과거가 자꾸 떠올랐다. 부끄러웠다. 기자 생활하며 만났던 사람들, 고되게 땀 흘리며 얻은 경험은 귀한 자산인데 난 과거 어리숙하고 부족했던 모습이 생각나 이불킥을 하곤 했다. 회사 그만두는 걸 마치 다시는 갖지 못할 보물을 버리듯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엄마, 주부를 선택했다는 사실에 난 당당했다. 내 인생 최고의 결단이었다. 나 자신이 기특했다. 그런데 아이들 엄마, 주부라는 사실을 초라하게 여기다니.


어느 순간부터 이름 석 자 뒤에 직장과 직함을 넣는 자기소개에 익숙했다. 만나는 사람 면면이 화려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기업, 듣는 순간 탄성이 나오는 글로벌 회사 리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얼굴도 달리 보였다. 나 역시 '기자'였다는 말에 누군가 "오! 기자시군요?!"라며 놀랍고도 신기하게 반응해주면 그게 좋았다. 아닌 척했지만 그걸 즐기고 있었다. 직업, 직장, 직함. 그게 전부가 아닐진대 우리는 세상이 부여한 단어로 자신을 소개한다. 세상이 정해준 대로 살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나 자신을 설명할 단 한 문장조차 만들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 버스를 기다리며 애먼 땅바닥만 툭툭 쳐 댔다. 주부가 어때서. 제대로 엄마 노릇하겠다고 호기롭게 사표를 냈던 때가 떠올랐다. 때가 되면 당당히 다시 돌아가리라, 다짐도 했었는데 어느새 난 복직을 두려워한다는 누군가처럼 나 자신을 작은 새장에 가둬두고 있었다.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뒷자리 창가에 앉아 혼자서 중얼거렸다. 다음에 시키면 완벽하게 자기소개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안녕하세요. 전 두 아들을 씩씩하게 잘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입니다. 글을 쓰며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난 글쓰며 강의하고 모임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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