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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ct 27. 2021

글쓰기 모임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토록 외로운 작업을 같이 하겠다고?

그러지 말고 같이 글을 써보는 게 어때요?


기자였다고, 지금은 혼자 글을 쓴다고 말했다. 글을 누군가와 같이 써 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철저히 홀로 해야 하는 외로운 작업, 글쓰기가 바로 그럴진대 함께 글을 쓴다?


지난해 초, 사춘기에 접어든 두 아들을 보니 이제 내가 슬슬 일해도 될 듯했다. 그러던 차에 하늘에서 선물처럼 일이 뚝 떨어졌다. 전직 기자였던 내게 꼭 맞춤인 일. 코로나가 온 국민의 숨통을 조여오던 때였다. 역병이 무색할 만큼 내 마음엔 봄바람이 살랑였다. 하지만 예상치 않게 왔던 기회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차라리 제안을 말지. 구름 위로 올랐다가 땅으로 푹 꺼진 느낌. 할 일도 없는데 일어나서 뭐 하나, 마음도 몸도 가라앉았다. 눈을 뜨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곤 했다.


우울감이 날 휘감기 전 움직여야 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랬다고, 글 쓰는 것밖엔 생각나지 않았다. 글을 잘 써서도, 누가 내 글을 원해서도 아니었다. 이리저리 도망가고 몸부림쳐봐도 어느 순간 난 펜을 움직이고 자판 위에 손을 놀리고 있었다.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뭔가 계획과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래, 혼자 해서 지지부진할 바에 같이 해 보자!


난생처음 모임 기획을 했다. 이름을 짓고, 모집 공지글을 썼다. 오픈한 지 한 달 된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오픈 채팅방에 글을 띄웠다. 기자 시절, 나름 이름 좀 날렸다고 할지라도 '왕년'이다. '라떼는 말이야'처럼 거품 같은 이야기도 없다. 난 그저 전업주부일 뿐, 온라인 세상에서 철저히 무명이었다. 한 명, 두 명 신청자가 들어왔다. 놀랍고 신기했다.


당시 난 다른 글쓰기 모임이 어찌 운영되는지 시장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언론 고시 스터디' 하던 경험을 살려 기자 지망생들처럼 함께 글을 쓴 후 읽고 서로 피드백할 계획이었다. 모임을 하겠다고 꼼지락거리던 날 보던 남편이 슬쩍 한 마디 던졌다. "그래도 명색이 '리더'인데 뭘 좀 가르쳐줘야 하지 않겠어?"


그때부터 책을 읽고 강의를 준비했다. 

멤버들이 글을 쓰면 그보다 더 많은 양의 피드백을 줬다. 내 글 쓰는 시간보다 남의 글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4주를 기획했던 모임은 8주, 12주 코스로 늘었다. 한 달이 끝날 때마다 멤버들은 예정에도 없던 '다음 과정'을 기대했다. 

읽어야 할 책도, 봐야 할 글도 나날이 늘었다. 잠이 저절로 줄었다. 밖으론 한 발짝도 떼지 않고 그저 집 안에서 쓰고 읽고 피드백을 했다.


그렇게 글쓰기 모임을 한 지 1년이 지났다. 그사이 글쓰기 강의는 100회, 글쓰기 코칭은 200회를 넘겼다. 매일 피드백한 글은 1700개에 달한다. 내가 피드백을 한다고 할 때 누군가는 말렸다. 그렇게 손 많이 가는 일을 하면 힘만 들지 돈이 안 될 거라고 했다.


글쓰기 모임 <라라프로젝트> 7기


글쓰기 모임 <라라프로젝트> 8기


모임을 시작하고 그제야 돌아보니 세상에 글쓰기 모임은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았다. 그들이 모임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난 내가 생각한 방식이 있었다. 

날 찾아온 사람들이 정말 글을 잘 쓰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기자의 노하우를 살려 글쓰기 방법을 알려줬다. 매일 쓰게 만들었다. 어떻게 하면 의도를 잘 표현한 글, 잘 읽히는 글이 되는지 전달했다. '그저 무조건 쓰라'는 말 대신, 어찌 쓰면 되는지 대안도 제시했다.


한글 파일 빽빽하게, 꼼꼼히 몇 시간을 들여 피드백하는 일은 고됐지만 멤버들의 글은 나날이 좋아졌다. 글쓰기에 자신감이 붙는 게 눈에 보였다. 글 쓰고 싶은 이들이 모여 웃고 울며 마음을 나누는 동안 그들의 표정도 살아났다. 내 글쓰기 모임에서 탄생한 '브런치 작가'만 15명.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어 신청한 이들은 백발백중, 모두 축하메일을 받았다. 이 방법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도 나는 글을 쓴다. 함께 쓴다. 어제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눴고, 오늘도 쓰고 피드백을 한다. 마음결이 고운 이들과 글을, 인생을 논한다. 혼자 글 쓸 땐 결코 알 수 없던 행복이다.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글쓰기를 빼곤 말할 수 없는 일상이 됐다. 내 인생에서 글 쓰는 일이 이토록 반짝일 줄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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