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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Dec 18. 2021

새해에는 우리 춤을 출까요?

입을 한껏 오므리고 미간에 힘주고 앉은 내 옆으로 큰아들이 다가온다. "엄마, 힘들어요? 기쁘게 일하는 게 가장 좋은 거래요." 녀석, 나도 안다. 누구는 기쁘지 않고 싶다니. 고개를 들어 아들을 쳐다본다. 열다섯 살, 중2 아들은 이미 내 키를 넘어섰다. 


"아들, 엄마는 왜 일을 마무리하는데 오래 걸릴까? 글도 빨리빨리 못 쓰고." 

"선택을 해야죠. 일을 빨리 처리하면서도 완벽하게 잘하는 사람은 천재겠죠?" 

"그럼 난 천재가 아니네." 1초, 2초, 3초. 잠깐의 침묵을 뚫고 아들은 말한다. 

"엄마는, 재능이 많으니까 조금 더 노력하면 되는 거예요." 짜식, 어느새 나보다 마음밭도 넓어졌다. 이제 아들이 나를 가르친다.


작은 일에 움찔거리는 어미와 달리, 큰아들은 멘탈이 강하다. 옆에서 뭐라 하든 자신의 생각 속에서 살아간다. 때로는 그것이 같이 사는 사람들을 힘겹게 하지만 적어도 질풍노도 시기의 사춘기 소년은 행복하다. 제 할 일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 자리를 만든다. 엄마가 외출 준비를 하는 사이, 책상 끝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고, 밥 뜸 드는 사이 소파에 기대서 신문을 읽는다. 고깃집에서 책을 읽고 버스 안에서 숙제를 한다. 화장실에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무슨 꿈을 꾸든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아이, 아직은 모든 일이 재미있다는 아이.


반면 어미인 나는 하루하루가 바삐 흘러간다. 새벽녘 눈을 뜨면 해야 할 일이 폭포수처럼 밀려온다. 마무리하지 못하면 다음 날 해야 할 일로 누적된다. 눈에 불을 켜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그러면서도 글쓰기 코칭을 시작하면 1시간을 훌쩍 넘기고 글을 쓰면 시곗바늘이 멈춰있는 듯 착각한다.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책을 만리장성처럼 쌓아놓고 아직 읽지 못한 책을 바라보며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봐. 곧 들여다봐줄게."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 하나, 둘 쌓여 쓰나미처럼 몰아친 올해. 한 해를 돌아보면 그저 노트북에 코 박고 숨 쉴 틈 없이 일한 나 자신이 떠오른다. 번데기처럼 밤이면 이불속으로 뛰어들어가 아침이면 몸을 빼냈고 밥때도 모른 채 글을 쓰고 읽고 피드백을 했다. 고3 때 이리 열심히 공부했다면 전국 수석 했을 텐데 역시 사람은 시키는 일보다 스스로 하는 일을 잘한다. 그러면서도 불현듯 스스로 묻는다. "넌 도대체 지금 뭐 하니? 왜 이러고 있니?"


 이어령 선생은 글을 쓰고 사는 일이 춤이었다고 했다. 글 쓰는 기쁨과 고통이 늘 공존하고 자족보다 의무감이 더 큰 내겐 '춤'이라는 말이 낯설다. 춤을 추는 이는 좋아서 춘다. 신나서 흥을 억누르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손을 까딱거리는 자는 흥에 겨워 그루브를 타는 자의 기쁨을 알지 못한다.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에선 "모든 분야에서 앞장 선 사람들은 노력과 고생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들이 노력을 즐기는 까닭은 성공의 희열이 무엇인지를 알고 고통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무슨 일이든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고생마저 기쁘게 즐기는 사람을 마지못해 하는 사람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춤을 출 거예요'라는 동화책에선 아이가 거실에서도, 집 밖을 나가서도 뱅글뱅글 돌며 춤을 춘다.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추는 꿈을 꾸며 아이는 말한다. "춤을 출 거예요. 춤이 좋으니까요." 


내년에는 나도 글 쓰는 일이 춤이 되었으면 한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 속에서 오솔길을 찾아 하얀 종이 위에 펼쳐 놓고 부드러운 미풍을 발끝에 매단 채 춤을 추었으면 한다. 달달한 케이크 한 조각을 앞에 두고 콧소리를 내는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어깨춤을 덩실거릴 참이다. 


<춤을 출 거예요>_강경수 작 (출처:yes24)
<춤을 출 거예요>_강경수 작 (출처: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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