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느끼는 것들을 토하듯 써재끼던 시절에는 글 쓰는 것만큼 쉬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되었으니까요. 그 문장이 얼마나 날것이고 공격적이었는지, 배려 없으며 이기적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울지 못한다면 썼고, 쓰지 못한다면 화를 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첫 브런치 글을 작성하려고 고민하면서, 제가 어느새 참 겁이 많아졌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런 낯선 두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열아홉, 교복을 벗기도 전에 시작한 직장생활 때문이라고 꽤 오래간 확신 해왔습니다만 어쩌면 천성이 그럴지도 모릅니다. 써재끼는 글보다는 눌러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지금 다시 보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할 것으로 점철된 나의 글이, 나의 감정이 누구에게나 어떤 영향도 주지 않기를 바랐지요. 혼자 쓰고 혼자 읽는 시간들이 익숙해졌습니다. 선언하듯 양심을 내보이겠습니다. 저는 도망쳤습니다. 그것도 필사적으로, 전력을 다해서요.
이왕 어딘가 글을 다루는 곳에 나를 내보인다면 그럴듯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스스로 또는 누군가가 알고 있는 결핍과 결점들을 많이 숨기고 다정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인 채로 나를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스럽고, 사랑하고, 쉬이 이해하고 너르게 표현하는 사람 말입니다. 여전히 희망이라 말하는 이유는, 제가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기도 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내용을 써야 사람들이 좋아할까? 어떤 내용을 써야 ‘괜찮아’ 보일까?라는 늪과 같은 질문 속에서 저는 첫 자도 써보이지 못했습니다. 쓰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 어려워 읽는 양을 늘렸습니다. 그래도 사실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지금 이 첫 글을 눌러쓰며 깨닫는 바가 있다면, 아마 제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저를 숨기는 데에 서투른 사람입니다.
오늘의 가쁜 숨을 최선을 다해 진정시키고, 스스로에게 차분한 상태라고 쉼 없이 되뇌며 저는 결심합니다. 숨기는 데에 서투르다면 드러내겠다고요. 어느 누가 제 결심에 관심이나 있을까요. 사실 우리는 서로에게 크게 관심 없는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요. 나의 드러냄은 오직 나를 위한 만족입니다. 그런 문장 뒤에 숨어보겠습니다. 재밌고, 즐겁고, 가볍고, 어쩌면 사랑스러운 글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저 저는 앞으로 수많은 질문에 대면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꾸준함은 성공으로 귀결되나요? “
라는 헛되지만 유의미한 질문이 떠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하는 사람이거나, 꾸준히 연락해 왔던 사람에게 늘 물어왔습니다. 꾸준함과 성공을 정의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고, 저 또한 그것을 정의하지 못한 상태로 물어왔기 때문에 모든 대답의 방향은 중구난방이었으나-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대화했던 스스로가 즐거웠던 기억 하나를 붙잡았습니다.
앞으로의 글에는 하나씩 질문을 해볼 예정입니다. 군중 속에서 입을 틀어막고 하는 선언처럼 여러분에게, 그리고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은 제 자신에게. 어디선가 본 질문일 수도, 스스로 떠올린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여러분들께 여쭈면서 저를 드러내보고자 합니다. 그게 말도 안 되게 무례한 질문이어도, 그 대답을 사랑해 보겠습니다.
이 소소한 서문이 어딘가에 닿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이 두려운 사람을 널리 맞이해 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