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선명한 증거가 있나요?
무언가를, 누군가를, 어딘가를 깊게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시점이 있다. 나는 그걸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증거라고 늘 생각한다. 누구나 하나쯤은 내 어떤 변화를 보고 “아, 망했다-” 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우스갯소리로 말하지만 난 정말 육성으로 망했다고 중얼거리곤 한다. 왜냐하면 내 증거는 정말 원치 않게도 통증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까지 괜찮다가 문득 뻐근하게 가슴팍이 아파올 때가 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통증이다. 길을 걷다 멈칫할 정도로 혹은 숨을 쉬는 것을 잠시 잊을 정도로.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증상이다. 누군가 콱 무언가를 박은 것마냥 불현듯 덮쳐오는 통증은 쉬이 눈물로 넘어간다. 심박이 아득하게 빨라지고 숨이 찰 때면 어디로든 전력으로 도망치고 싶어진다. 쉽게 정을 주지만 쉽게 애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늘 이 아픔 때문이다. 떠올리다 돌아오는 고통은 자주 경험하는 게 아니고 아프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이 불어나는 게 감정이라서 늘 악순환을 거친다. 사실 그래서 난 누군가를 사랑하는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쉬이 솟구치고 가라앉던 사람이라 동요하는 삶을 극심히 기피한다. 하지만 사랑이 그리 평안한 것이던가. 일상에 절대 찾아오지 않는 파도를 쉼 없이 쏟아내니 사랑인 것이라- 심장이 겪지 못한 심박으로 쾅쾅거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사랑이라, 세상의 그 빠짐없는 사람들이 온갖 것으로 풀어내는 것일테다. 내게는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의 다정함, 간절함, 간혹 느껴지는 두려움, 턱 밑까지 차오르는 벅참- 삶의 주파수에 없는 기분들에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면 빠듯한 통증이 찾아온다. 그때부터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심박은 원치 않게 빨라지고 감정은 물렁해지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아무리 도망쳐도 쉬이 놓여날 수 없다.
그것이 또 사람뿐일까. 소속된 무언가든, 장소이든, 음악이나 책이든- 아주 흔치 않게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온다. 그럴 때면 완전히 얽매여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절대 놓지 못하게 된다. 이전에 다녔던 회사가 내게는 그랬고, 지인이 아주 무심하게 큰 고민 없이 선물해 준 책이 그랬다. 갑자기 삶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떼어낼 때마다 그렇게도 아팠다. 사랑은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기도 하고 버거울 때마다 달려가 안기고 싶게 하지만 그만큼 또 반작용처럼 아프기도 하니까. 그래서 내게는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점점 더 어렵다. 그건 곧 출렁이고 흔들리고 부딪히고 무너지고 부서지고 사랑할 것이라는 의미니까.
다만 사랑은 기피할 수 없고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안다. 애정이란 양방향이고 주고받는 위안이 꽤 큰 기둥이 된다. 아픈 게 싫다고 도망치자니 그것만큼 찬란한 때가 없다는 것도 안다. 사랑하는 나도, 사랑받는 나도, 사랑하는 상대도, 사랑받는 상대도, 끈끈하게 연결되는 새로운 세상이니까. 아픈 걸 두려워한답시고 도망칠 수는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늘 깨닫는다. 뛰지 않던 심박으로 뛰는 심장을 인정해야 하고. 이 순간으로 인해 또 다른 맥박이 만들어진다는 것도. 사실 이 글은 어쩌면 두려움을 묻어놓기 위함일 수도 있겠다.
사랑은 두렵지만 우리는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감정을 뒤흔들고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렇다면-
당신에게 사랑의 증거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