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르시시스트

열등감이 드러나는 순간

by 발가락꽃

자존감을 긁어내며 애써 자신을 크게 보이려는 모습이 우습게 비친다.

나르시시스트는 ‘과잉보호’와 ‘조건부 인정’ 속에서 자란다. 집에서 단 한 번도 실패하거나 좌절해 본 적 없는 아이가 세상에 나가 자신보다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나면서 현실과 자아상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그 갈등은 불안을 덮기 열등감으로 드러나고 위해 주변 사람을 깎아내리며 다시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의 위치를 되찾으려 한다.



그렇게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의 자존감을 빼앗아 자기 가치를 지키는 ‘자존감 사냥꾼’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겉으로는 자신감 넘쳐 보이지만 내면에는 작은 열등감 덩어리를 품고 있다. 그들은 질투심이 강하고, 인정이 흔들릴 때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모두들 나르시시스트의 피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내 안의 내면아이가 가끔 나르시시스트가 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 내면의 나르시시스트가 나올 땐 항상 "열등감"을 느낄 때다. 한 번쯤은 다들 자존감이 무너질 때가 있을 것이다. 특히나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분야에서 성과를 낸 사람을 만날 때 그런 일들이 생겨난다.



내 인정욕구는 한없이 쪼그라들어 남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바로 대화의 형태에서 알 수 있는데, 평소에는 소통의 대화, 이어감의 대화를 잘하던 사람이 열등감이 폭발하면서부터 상대가 알아들을 수 없는 자신의 인사이트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마치 화자의 기를 꺾어 놓겠다는 심정으로.



나도 그렇다. 누군가가 너무 잘나 보이면 나도 못나 보이기가 싫다. 나도 이만큼의 성과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내 몸을 한 것 부풀리고 상대에게 내가 얼마나 위대한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에 대해, 네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음을 어필하고 싶어진다. 내 몸집을 부풀려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올라온다.



하지만 이것을 당하거나 제삼자의 입장으로 보면 너무나도 잘 보인다는 것이다. 자존감을 긁어내며 애써 자신을 크게 보이려는 모습이 우습게 비친다. 그리고 그렇게 복어처럼 부풀어진 독을 뿜는 사람은 더는 매력적인 이야기 상대가 아니다.



만약, 내가 누군가 앞에서 과도하게 자신을 내세우고 싶은 욕구가 든다면, 그 사람이 모르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랑하고 싶다면, 움츠린 내 내면의 아이를 한번 꼭 안아주자.



나르시시스트는 멀리 있지 않다. 늘 내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자기 안에서 그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펼치지 못한 꿈을 마음 끝자락에 고이 접어 보관한다.

그 꿈은 때로 애가 닳게 하고 때로 회한스럽게 한다.


엮어내지 못한 꿈은 살짝만 스쳐도

사람을 순진하게 만들고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 실바람에도 아리다.


그 가시의 고통이 열등감으로 번질 때,

내면의 아이는 나르시시스트의 얼굴로 모습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