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은 언제부터 지옥이 됐나?
“타인의 시선은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이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타인의 시선이 지옥인 건 아니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시선을 받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어른이 항상 자신을 바라봐 줬으면 한다. 그래서 엄마, 아빠에게 여기 보라고 하고, 자기가 한 걸 보여주며 자랑하기도 한다. 선생님에게도 관심받고자, 귀에 팔을 붙일 정도로 손을 높이 들고 발표하려고도 한다.
사실, 타인의 시선은 감시 이전에 세상으로부터 내 존재를 승인받는 수단이다. 내가 한 일이 자랑스러우며, 그렇기에 내가 다른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것, 인정받는 것을 확인하는 건 타인의 시선 덕분이다.
그럼, 타인의 시선이 언제부터 지옥이 될까? 아마 사춘기 때부터지 않을까? 어른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이제 발표하는 게 싫어질 때부터가 아닐까?
사춘기가 되면 모두들 자기의 생각주머니를 만든다. 어렸을 때는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웃기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내 소원은 정말 통일이었다. 그냥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모두가 불쌍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정말 몸이 불편한 친구들을 챙겼다. 착한 어린이 상도 받았다. 난 그걸 왜 내가 받는지 이해 못 했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나는 정말 꽉 막힐 정도의 FM이었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꼴통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에 대해서 타협이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타인의 시선이 두렵지 않았다. 당연한 걸 하는데 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겠는가?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은 이상적인 것이고 사람들은 그에 맞춰 살아가지 않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은 다양하고 삶의 방식은 다양하다는 걸, 반에 임의로 모아둔 친구들을 통해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어렸을 땐 당연히 여기던 말들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시기에 나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혼란에 빠졌다. 남과의 다름을 인식하고부터 남의 다름이 낯설어졌으며, 타인의 시선이 불편해졌다.
사춘기의 우리는 혹시라도 튈까 봐 전전긍긍하며, 동일한 교복을 입고 각자의 생각주머니를 키워갔다. 우리의 생각주머니는 가족의 가치관과 닮기도 다르기도 한 것이었다.
거기에 가족이 준 좋은 기억, 나쁜 기억을 담고, 친구들이 만들어준 사회도 담아 보고, 어른들이 준 여러 편견들도 담았다. 하지만 그 안에 가장 많이 넣은 것은 사회가 요구하던 당연한 가치보다는, 내가 습득한 가치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내 취향들, 내 기준들…이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도 내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다. 내가 싫고 좋음의 논리를 취향이란 이름으로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각자의 기준들은 무엇 보다도 개인적이며, 그렇기에 내 기준 역시도 세상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었다.
그 처절한 낯선 느낌 때문에 가족들마저 낯설어졌던 시기가 지나갔다. 여전히 나는 취향이란 이름의 나만의 기준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건 남과 다름을 나타내는 것이고 누군가는 이것으로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고 싶어서이다.
그때쯤이었던 거 같다. 생각 주머니에 작은 끈을 달아 두었다. 내 마음 한편에 모셔둔 생각 주머니에 끈을 발견한 사람만 열 수 이게 아주 작은 끈을 달았다. 이 끈을 발견하고 당겨, 주머니를 열고 우리의 같음과 다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 맞는 사람… 그 사람과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 어린 시선은 나에게는 확신이 된다.
나의 행운점이었던 건 누군가 늘 이 끈을 발견해 줬다는 것이다.
모두들 그런 말을 한다. 고등학교 이후엔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고등학교까지 순수한 마음으로 만난 친구들만 진짜 친구라고… 대학부터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진짜 친구를 못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난 언제나 마음의 끈을 풀어주는 친구를 만났다. 대학교에서도 만났고 사회에서도 만났다. 어디서 만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마음의 끈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이 어디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이 맞으면 친구다. 비슷한 생각주머니를 가지면 말하지 않아도 느끼며, 멀리 있어도 통한다. 서로 생각하는 그런 친구…
우리의 선은 너무 평행해서 긴장하지 않아도 선을 넘지 않는다. 난 너의 선을 지키고 넌 나의 선을 지킨다. 그냥 숨 쉬듯 지켜진다. 우리가 서로에게 주는 눈빛은 감시가 아니라 확신이다. 그들의 눈을 통해 난 다시 한번 세상을 확신한다.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같은 생각주머니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시선은 나에게 확신이 되고 어쩌면 천국이 된다. 나의 시선도 그들에게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지옥일 때는, 그 지옥을 천국으로 변화시켜 줄 누군가를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