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불안을 아이에게 씌우는 방식
어릴 적 나는 폭력에 노출된 삶을 살았다.
아빠는 폭군이었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물건을 던지고, 부수고 심지어 사람까지 때리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나는 아빠의 오른팔로 사랑을 받으며 컸지만,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나는 아빠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사춘기 무렵부터 나의 행동에 생각이라는 것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나에 대한 생각인데, 대표적인 게 화를 푸는 방법이다.
살아가며 누구나 다 화가 나고 그것을 해소하려고 한다. 그때 해소 방법이 다들 다른데, 누군가는 청소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고함을 지르기도, 누군가는 말을 안 해버리기도 한다. 어린 나의 방법은 아빠에게 물려받은 대로 물건을 부수는 일이었다. 집안의 물건을 던지거나 밟아 부숴버렸다. 그것이 집에서 용납이 됐으니까 말이다.
사춘기 무렵, 여느 때와 비슷하게 엄마와 말다툼을 하고 씩씩거리며 내 방으로 들어와 무언가 집어던지려던 순간,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하고 있나? 이걸 던져도 안 던져도 화가 풀리는 것은 동일할 것 같다는 생각. 그래서 나는 그 물건을 그냥 내려놓는 선택을 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화가 났다고 물건을 부수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해 본 결과, 이런 화풀이는 부모님이 했던 행동과 동일하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무언가로 해소를 하고 싶은데 사실 뭘 해도 해소가 되지 않기에, 부모님이 했던 행동을 하면 풀릴까 싶어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가정과 사회의 통념에서 어느 정도 내가 해도 되는 범위를 정한다. 어떤 가정에서는 부모가 욕을 하면 자식도 욕하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물건을 부수면 그것도 자식에게 허용이 된다. 하지만 부모가 절대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자식은 엄두를 못 내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것을 가정에서 보고 배운 것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회적 합의에 가까운 행동인 것이다. '여기까지는 용납이 되는구나'라고 은연중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내가 보는 문제가 이혼가정의 아이들이다.
이혼뿐 아니라 일반적인 가족의 형태에서 벗어난 입양, 이혼, 재혼, 편부모를 가진 모든 아이들에 대한 문제다. 이혼가정의 아이들은 반드시 결핍을 느끼며 살아야 할까?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이혼을 했고, 나는 부모님의 이혼에 아주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위에서 언급했듯 우리 아빠는 폭력적인 사람이었고, 나는 아빠가 없어지길 어느 순간부터 원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나에게 아빠의 자리에 대한 결핍은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나에게 결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모가 없는 게 창피한 것처럼, 피해자인 것처럼 굴도록 시켰다. 이것도 하나의 사회적 정서 합의이다. 나는 아빠가 없다는 것을 감춰야 했으며, 아빠가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불쌍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랬기에 그것이 싫어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프랑스 유학을 하던 중 과외하던 한 학생(당시 12세 정도)의 부모님의 이혼을 겪게 됐다. 꽤 오래 과외를 했고, 크리스마스도 함께 보낼 만큼 가까운 사이였기에 위로라도 건네고 싶었다.
"힘들지?"라는 내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내가 왜?"였다.
그건 부모님들의 일이지,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말이었다. 솔직히 조금 충격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기도 했다. 물론 부모의 이혼이 아이에게 아무 영향도 없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아이도 너무 힘들어했다. 가정의 변화가 아이의 세계가 흔들리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아이의 일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문화적으로 프랑스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받아들인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도 많고, 재혼가정이나 한부모 가정도 흔하며, 동성 커플의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이미 상황을 겪고 있는 아이에게 "너는 힘들어해야 해", "슬퍼해야 해", "울어야 해"라고 강요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것은 마치 울고 싶은 아이의 마음에 자리를 깔아주는 것처럼, 그들의 방황할 권리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마치 내가 어렸을 적 화났을 때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를 때, 가장 폭력적인 방법도 괜찮다고 했던 아빠처럼 말이다.
부모의 이혼, 남과 다른 가족의 형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충격이며 혼란이다. 하지만 이런 가정환경은 아이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아이가 선택한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그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당연히 힘든데 그냥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면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아이기도 하다. 힘든 공부도 부모가 시키면 참고하고 밤잠을 견디며 하고 , 지겨운 학교도 가라고 하니 참고 가고, 그냥 당연하다고 이야기하면 또 그렇게 당연하게 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그래서 사회적 시선이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당연하게 여기고 힘든 아이를 보살피되, 불쌍한 아이를 만들지 않는 것이 아이들의 방황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조금 더 담담해질 수 있도록, 본인 일이 아닌 일로 방황하지 않도록, 그 아이 자신과 가정환경을 동일시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렇다면 아이는 자기 안의 분노를 삼키고 더 빠르게 진정할 수 있지 않을까?
자꾸 불쌍하다고 가엽게 여기면 아이들은 방황할 자리를 찾아낸다. 그런 시기기도 하다. 원래 힘들고 어려운 유년기에 방황할 거리를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국도 이제 이혼은 흔한 것이 되었으며, 입양가족, 편부모가족도 늘어나고 있다. 남들과 다른 가족 형태가 동정의 대상도, 일탈의 이유도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삶의 한 방식이 되는 시대를 맞이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런 종류의 동정은 아이에게 불필요한 서사를 대신 만들어주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서사는 자기 연민으로 가기 쉽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시선만큼은 거둬두는 건 어떨까. 동정만은 조금은 접어두는 건 어떨까. 아이들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