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7
몇 주 전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뜻밖의 여정>이라는 프로그램이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다. 단톡방에서 이야기가 나오더니 어제오늘, 다른 친구들도 소감문을 보내왔다. <뜻밖의 여정> 속 윤여정은 젊은 여성들에게 영감과 지혜를 전해주고 있다는 감상평이 카톡 방마다 쌓여간다.
그녀는 젊은 여성들로 하여금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그때 나는 누구와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회피하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미래의 시간에 대해 자리를 고쳐 앉아 생각하게 만든다.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공통적인 감상 위로 각자의 다짐이 쌓였다.
누군가는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고 몇 년 뒤 다른 나라로 이주 계획을 세운다. 누군가는 자기 사람을 어떻게 만들고 유지하고 사람들 속에서 나이들 수 있는지 고민한다. 늦었다고 주저하던 누군가는 결국 원하는 일을 선택하고 커리어를 바꿀 준비를 한다.
계획 세우지 마, 어차피 계획한 대로 안 돼
삶이란 예상한 대로, 기대한 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노배우의 단호한 문장 앞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예상한 대로 되지 않아 고통받지만 반대로 계획하지 않은 멋진 순간, 상상보다 더 큰 성취가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는 것을 그녀는 인생으로 보여주었다.
자기 사람을 만들고 모으는 방법
친구들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느슨한 연대와 모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민 생활을 함께 보낸 오랜 벗부터 젊은 번역가, 동생 친구, 아들 친구, 자신과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 그들은 나이와 성별, 성장 배경을 떠나 자연스럽게 한 공간에 모여있었다.
홍상수 감독의 현장에서 만난 정여울 번역가는 십수 년 뒤 윤여정에게 미나리 대본을 건넨다. 그녀를 캐스팅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으나 프로젝트가 사라져 당황해하던 한국계 독일인은 이제 미국에서 함께 일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의 감각적인 패션센스는 젊은 남성 스타일리스트가 완성한 것이다.
그녀에게 한 번 만났다 헤어질 사람은 없다는 문장은 아직도 큰 울림이 된다.
쉽게 관계를 단절하고 손절이라는 주식 용어가 인간관계에 사용되는 시대에, 너무 쉽게 사람을 지우고 잊는 게 아닐까.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나지 않더라도 설사 그 목적이 달성되지 못한 상황에 일로 만난 사이더라도 느슨한 연대의 관계를 십수 년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먼저 손을 내밀고 함께 식사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목적이나 성과와 상관없이 꾸준히 이어가는 것. 1대 1의 관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 연령, 성별의 사람들의 그룹, 크루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