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0
새벽에 침대에 누워 반 클라이번 콩쿠르 파이널 중계 영상을 보았다. 세미파이널 12명에 한국인이 4명이나 진출하다 보니 클래식 커뮤니티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빛나는 재능이 만개하는 장면은 보는 사람들마저 전율시킨다. 그 덕분에 주말 내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영상을 돌려보았다. 이번에 최연소 우승을 한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지금까지 반복해서 듣고 있다. 특히 3악장의 연주는 경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빠져들어 시청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귀로만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눈으로도 보고 싶기 때문에 할 일이 쌓여있음에도 유튜브를 끄지 못하고 계속 바라보게 된다.
반짝이는 재능은 그 재능을 가지지 못한 사람도 알아보고 함께 즐길 수 있게 만든다. 콩쿠르 파이널 중계 영상을 처음 보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쇼팽 콩쿠르부터다. 당시 임동혁, 임동민 피아니스트가 파이널에 올랐고 임동혁 피아니스트 피아노 조율 사건까지 실시간 저화질로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 2015년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쇼팽 콩쿠르 파이널까지 떠올랐다. 각종 콩쿠르 파이널과 함께 음악을 접하고 배우기 시작했던 어린 시절까지 함께 떠올랐다.
나는 음악에 소질이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악기를 배웠다. 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하지도 않고 과일에 색을 칠하거나 체크를 해가곤 했다. 보다 못한 엄마가 그래도 체르니 30번까지는 끝내자고 어르고 달랬다. 그 약속 그대로 엄마 앞에서 체르니30번의 30번을 치고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었다.
피아노를 그만두고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엄마가 플루트를 사 오셨다. 새로운 악기를 배운다면 현악기를 배우고 싶었는데, 당시 나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폐활량이 적었기에 폐 운동 삼아 배워보라는 엄마의 결정이었다. 딸이 악기 하나는 즐겨 연주하기를 바랐던 엄마는 중3 때까지 레슨을 시켜주셨다. 덕분에 중학교 때 학교 관현악단에서 각종 학교 행사와 조례시간에 애국가와 교가를 연주하며 합주의 즐거움을 경험하기도 했다.
중3 이후 플루트나 피아노를 연주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학교 때 과외를 하러 갔다가 늦게 도착하는 학생을 기다리며 그 집에서 피아노를 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피아노를 물려준 친척 동생 집에서 하농으로 손을 풀고 소나타를 몇 곡 연습 삼아 친 것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나는 악기를 연주하지 않아도 음악을 즐기고 전율하고 감동하는 사람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전공할 것도 아닌데 중학교 때까지 악기를 바꿔가며 가르친 엄마 덕분이다. 피아노 학원에 가서 순서를 기다리며 읽었던 만화로 그려진 음악가들의 전기 전집으로 음악사를 공부했고 피아노와 플루트를 배운 덕분에 클래식을 좋아하게 됐다. 아빠가 즐겨 듣던 팝송과 영화 음악 덕분에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전공하지 않아도, 더 이상 악기를 연주하지 않아도 음악을 흠뻑 사랑하게 된 것은 엄마, 아빠가 뿌려준 씨앗과 환경 덕분이다. 그 덕분에 음악이 주는 기쁨을 한 껏 누리고 콩쿠르 새벽 중계를 실시간으로 찾아보며 빛나는 재능이 만개하는 현장을 보는 환희를 체험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PJL488cfRw&t=20s
https://www.youtube.com/watch?v=QGiK9OqB-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