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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름차차 Jul 27. 2022

강렬한 맛의 순간들

2022.07.25

요즘 입맛이 없다. 래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을 떠올리며 식욕을 돋우고 있다. 이상하게도 여행 중에 먹고 마신 것들은  순간의 온도, 습도, 냄새, 배경음악까지 고스란히 떠오른다. 여행을 떠난 지인들이 속속 사진과 여행담을 보내오는데, 떠나지 못해서일까 여행사진을 찾아보며  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가장 맛있게 먹은 메로나 아이스크림, 씨엠립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씨엠립 야시장을 돌며 먹던 메로나의 맛을 잊지 못한다. 동남아 하면 과일이라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동남아의 뜨거운 열기와 방금 지나간 오토바이가 내뿜던 매연, 비포장도로의 먼지와 모래들 사이에서 먹던 메로나 아이스크림이 더 인상적이었다. 앙코르 유적지를 천천히 둘러보자는 마음으로 갑자기 떠났던 여행에서 일주일 정도 천천히 돌아보자 더 이상 볼 유적지가 남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다음 여행지를 결정해야 했다. 태국이나 베트남으로 넘어가라는 여행자들의 추천에도 나는 꿋꿋하게 현지 관광사무소에서 발견한 브로셔 속 캄보디아 휴양지로 결정하고 약간은 두렵고 약간은 설레던 그 순간 먹던 아이스크림이 떠오른다.



한국인의 솔푸드 설렁탕, 뉴욕

뉴욕 한 달 살기를 시작하고 3주째에 접어들자 화려한 야경도, 뮤지컬도 이전처럼 가슴을 뛰게 만들지 못했다. 재즈클럽에서 케니지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도 본인이 뉴요커인 양, 내일이라도 다음 주라도 언제든 보러 갈 수 있는 사람처럼 심드렁하게 거절할 정도로 여행 권태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때, 화창하던 뉴욕에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비바람이 몰아쳐서 숙소에 머물렀어야 했던 그때, 갑자기 한인타운의 설렁탕이 미치도록 먹고 싶어졌다. 우산을 쓰고 비바람을 뚫고 반쯤 비에 젖어 식당에 들어가 설렁탕 한 모금을 숟가락에 떠서 마시던 그 순간이 오롯이 기억난다. 작게 케이팝 노래가 들려왔고 옆 테이블에는 아시안계 유학생이 한식을 칭찬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머리까지 물에 젖은 여성이 설렁탕을 먹으며 그토록 안도하고 감탄하자 옆자리 유학생들은 다양한 사연을 떠올리며 나를 힐끔거렸다. 한국에서 아무리 설렁탕을 먹어도 그날의 그 맛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강매의 현장에서 마신 민트 티, 모로코 탕헤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루트를 따라가기 위해 나는 굳이 스페인 타리파를 들려 탕헤르로 넘어갔다. 여행비용을 평균 비용으로 계산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배분하기 때문에 아주 좋은 숙소에서 머무를 며칠을 위해 아주 값싼 숙소도 일정에 욱여넣었다. 스쳐 지나가듯 잡은 타리파 숙소가 바로 그 욱여넣은 것이었다. 이름 모를 독일 여가수의 라이브 콘서트가 방영되는 tv가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그 숙소에서 뛰쳐나오듯 탕헤르행 페리에 올랐다. 대신 탕헤르에서는 좋은 호텔을 잡아 머물렀다. 여행 비수기인 11월, 아시아 여성 혼자 탕헤르를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는 호텔 직원의 만류로 나는 현지에서 반나절 가이드를 추천받아 함께 다녔다. 언제나 그렇듯 가이드는 쇼핑 타임을 마련해준다. 오일과 향신료, 카페트를 강권하는 현장에서 제대로 된 민트 티를 처음 마셨다. 스피아민트 껌에서나 맛보던 민트맛을 초록 초록한 잎이 가득한 민트 차로 마시던 순간, 책과 영화에서 보던 특정하기 어려운 그 시절(?)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스피아민트 껌을 씹을 때 느껴지던 그 맛이 몇백 배 강하게 확 풍겨오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크게 눈을 뜨고 카페트를 사 가길 기대하는 상인과 눈을 마주쳤다. 이 순간의 감동을 공유하기 위한 눈 맞춤이었지만 학생이라 돈이 없고 엄마 카드밖에 없다는 말에 실망한 상인은 나의 이 감탄에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지인들을 붙잡고 우리는 모두 제대로 된 민트 티를 마셔보아야 한다고 직구를 추천할 정도였다.



이 외에도 가장 강렬했던 맛의 순간이 많다. 가장 맛있게 먹은 스테이크, 이탈리안 피자, 베트남 쌀국수는 모두 뉴욕에서 먹은 것이었고 한국에서 마신 것과 달리 싱싱하고 상콤했던 모히또는 모두 크로아티아에서 마신 것이었다. 심지어 크로아티아에서는 모히또 가격으로 도시별 물가를 가늠하기도 했다. 감기를 싹 낫게 해준 스페인 론다에서 먹은 소꼬리찜도 기억에 남는다. 여행에서 맛 본 이 모든 강렬한 오감의 순간들이 재택근무를 하며 견딘 오늘의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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