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7
방금 정세랑의 <목소리를 드릴게요>의 책장을 덮었다. <피프티 피플> 보다 정세랑의 세계가 더 따뜻해졌구나 감탄하며 페이지를 넘겼는데, 알고 보니 2010년, 2015년, 20116년, 2017년, 2018년까지 다양한 시기에 쓴 것이었다. 더구나 <목소리를 드릴게요> 단편은 피프티 피플을 쓰기 전에 쓴 것이었다.
<피프티 피플>을 읽으며 불행과 불운은 어느 날 갑자기 난데없이 찾아올 수 있고 그것은 자연재해 같은 것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인생의 무정함을 그리는 작가를 보았다. 에어컨 바람이 세게 나오던 카페에서 읽다보니 그 무정함이 한기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 시기에도, 그 전에도 이렇게 따뜻하고 낙천적인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니.
좀비가 나타나고 이상한 약이 등장하고 각종 저주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격리당하고, 이상한 세계를 디자인하는 아트 디렉터가 나오는 세계. 이 단편집이 그리는 세계는 망하는 중이거나, 이미 망했거나, 망해야 하는 세계였다. 아포칼립스풍의 세계라는 평론가의 해설대로 다양한 방식으로 망해가는 세상을 그리고 있지만 정세랑의 세계에서 가장 깊은 낙관주의를 읽어냈다. 이 문명이 보존되고 유지되어야 할 이유가 없지만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그 안의 개인들이 망해버린 세계를 붙들고 끝내 포기하지 않고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며 안도했고 몰래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마감의 압박 속에서도 이 작품집을 아껴서 한 편씩 읽고 또 읽었다. 나에게는 몰래 품을 수 있는 대책 없는 희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릴수록 비극적인 엔딩과 염세주의에 쉽게 빠진다. 나 역시 그랬다. 해피엔딩과 캐릭터의 성장은 너무도 뻔하고 진부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낙관주의가 대안 없는 비관주의와 염세주의보다 더 용기 있고 강한 것임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살아갈만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책장을 덮어야만 책장 밖 세상을 좀 더 견딜 수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