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름차차 Jul 29. 2022

열대야의 한가운데서

2022.07.29

문학은 탄광 속 카나리아 같은 역할을 한다. 사회의 위기, 종의 위기, 지구의 위기를 빠르게 감지해 기록하고 이야기로 써 내려간다. 처음에는 서브텍스트에 숨겨 놓는다. 사회 구성원과 독자가 여전히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다면 서브텍스트는 지면 위로 명료하게 올라와 텍스트가 된다. 



지금을 살아가는 작가들이 환경위기를 고발하지만 여전히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UN 보고서가 2050년의 위기를 수십 차례 경고하고 지구의 기온 상승이 불러올 각종 위험들을 발표해도 사람들은 어제와 같은 소비행태와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카나리아의 울음소리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며 음소거를 누르려 할 뿐이다. 사실,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에는 날 서게 비판할 여력이 있지만 종의 위기 앞에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과연 종말의 경로를 옮길 수 있을지 너무 무겁고 거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인지 모른다. 



며칠 째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지만 당장의 기후 위기를 절감하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혹독하고 극단적인 기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구 각지에서 벌어지는 이상 고온, 산불, 가뭄, 폭우, 폭설에 둔감하다는 문장이 슬프고 악의적인 농담 같았다. 40도에서 영하 20도까지 60도 정도 되는 기온 스펙트럼을 직접 체험하고 봄에는 황사, 여름에는 장마, 건조한 간절기에는 으레 산불이 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일까. 극단적인 더위와 추위, 산불이 지구 전역에 확산되고 있지만, 우리는 심드렁하다.



열대야의 한가운데서 수북이 쌓인 분리수거함의 플라스틱을 보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카나리아의 울음소리를 커지는데 무얼 해야 할지 상념만 많아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걸음 더 걷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