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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름차차 Aug 12. 2022

퇴고를 싫어하는 사람

2022.08.11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헤밍웨이가 남긴 말이다. 다른 대문호들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일필휘지란 결국 한 여름밤의 꿈같은 것이고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작가라는 직업과 작업에 갖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퇴고가 너무 재미없다. 마무리를 위해 몰아서 글을 쓰고 어쨌든 초고의 방점을 찍고 나면 다시 꺼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스터디원이 추천한 작법서들을 쌓아놓고 읽으면서도, 정작 내 글을 다시 보는 일은 미루고 있었다. 초고를 마치면 숙성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신경을 쓰고 다른 일을 하며 시차를 둔 뒤 다시 봐야 한다. 하지만 나는 2고, 3고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며 무한정 미루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바쁘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 대신 이것저것 다른 일들을 하며 또 이번 주를 보냈다. 내일부터-라는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속지 않기 위해 이 시간에 커피를 내리고 다시 파일을 열었다. 



겨우 마음을 먹고 자리에 앉아 초고를 읽다 보면 어이없어서 줄을 긋는 문장과 문단, 장면들이 있는가 하면 어느 부분은 과연 내가 쓴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감탄하기도 한다. 치욕스러웠다 재미있다 부끄러웠다 지겨웠다 하기 싫었다 그럼에도 이렇게도 고쳐보고 저렇게도 고쳐본다. 



퇴고를 할 때에는 일단 한 문장씩 읽는 것이 아니라 쭉 1 회독을 해야 한다. 체크해야 하는 부분들에 표시하며 넘어간 뒤 미리 2 회독부터 취약한 부분을 정리하고 개선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미리 퇴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플롯, 캐릭터, 장면을 수정해 나가야 한다. 소설이라면 시점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1인칭 시점인데 그 구도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을 묘사한다던가, 알 수 없는 정보를 이미 알고 있다고 전제하는 실수를 피해야 한다. 



대본이라면 씬 구성표를 엑셀로 다시 확인하며 플롯을 확인해야 한다. 작법서를 읽으며 정리한 자신만의 설계도를 통해 구성점-도발적 사건, 1장구성점, 중간점, 2장 구성점, 크라이시스, 절정, 엔딩 등-의 위치와 길이를 검토해야 한다. 플롯을 확정하면 씬마다 시간대(낮/밤), 장소(야외/실내) 등도 검토해봐야 한다. 캐릭터 붕괴는 없었는지, 대사 길이가 적절한지 발화하며 시간을 재야 한다. 매체마다 글쓰기의 방향과 퇴고 체크리스트가 다르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하며 동시에 작업하기보다 기간을 정해두고 한 작품, 한 매체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막연하게 퇴고 기간을 무한정 작업하기보다 작업 기간을 확정해서 스스로에게 마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퇴고를 싫어하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다. 5고 6고까지 작업하는 수많은 작가들을 생각하자. 이건 모두 나에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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