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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름차차 Aug 30. 2022

지워진 원고 다시 쓰기

2022.08.29

주말이 삭제됐다. 강의를 듣고 스터디를 하고, 행사를 치르고 주말이라는 휴일 없이 2주 정도 보내다 보니 체력도 마음도 쇠잔해졌다. 그래서였을까. 오랜만에 사고를 쳤다.



세이브 원고를 써놓고 자겠다는 욕심에 신나게 2편 분량의 원고를 썼다. 습관처럼 저장 버튼을 누르는데 어제는 그걸 의식할 새도 없었다. 회차별 에피소드와 장면을 정리한 엑셀 창은 모니터에 띄워놓고 노트북 화면은 한글 프로그램을 켜놓고 작업했다. 쉬지 않고 썼다. 퇴고는 몰아서 할 테니 일단 새로운 원고 회차를 확보하자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신기할 정도로 거침없이 멈춤 없이 글이 손에서 흘러나왔다. 오랜만의 감각이었다. 스스로를 감탄하면 신나게 써 내려가다가 노트북이 갑자기 꺼졌다.



이런 일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대학  파워포인트 파일 1, 리포트 1편을 제대로 날린  습관처럼 컨트롤 + S누른다. 혹여나 저장이 되지 않을까 마우스로 다시 저장버튼을 클릭한다. 하지만 어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손가락에서 글자가 계속 나오고 있었으니까.  없이 2 분량의 원고를 내리 쓰고 있었으니까 글이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세이브 원고 2 치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평일  아파도 괜찮다는 뜻과 같다. 하루 종일 죄책감 없이 뒹굴 거릴  있다는 의미였다.



요즘은 컴퓨터 오류로 전원을 껐다 켜도 자동 저장으로 직전의 파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간까지는 저장된 파일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파일조차 없었다. 마치 그 글을 쓴 적 없는 것처럼. 퇴고를 하며 한 번이라도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에피소드 플롯만 보고 써 내려간 게 잘못이었다.



빈 화면을 보니 도저히 다시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사 몇 줄, 문장 몇 줄만 생각났다. 방금까지 손가락에서 멈추지 않고 글자가 흘러나왔는데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인기 작품도 아니고 정식 연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벌써, 이런 일이 생기자 힘이 쭈욱 빠졌다. 쓰던 글이 지워지는 도시괴담이 나에게 다시 벌어지다니. 꾸역꾸역 뭐라도 써야지 하며 고인 눈물을 말리며 어쨌든 앉아있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못 쓸 수 있다니- 여러 의미로 놀라웠다.



그렇게 일요일 밤을 새웠다. 그래도 해는 떴다. 날은 밝아오고 나는 다시 앉아 글을 썼다. 세이브 원고가 있었으니 그것을 먼저 업로드하고 어제 버전보다 몇 계단 내려앉은 글을 어쨌든 써냈다. 어제 쓴 분량만큼을 기어이 채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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