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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름차차 Sep 01. 2022

캐릭터 전사 상상하기,  <첨밀밀>의 인물들

2022.08.30

이번 스터디 과제는 캐릭터 구축 방법에 대한 설계였다. 캐릭터의 전사와 후사를 상상해서 작성하는 것이 과제였다. 원래 드라마를 보고 분석하려 했지만 지난주 금요일 영화 <첨밀밀>을 다시 본 뒤로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0대, 20대, 그리고 30대인 지금, <첨밀밀>을 볼 때마다 처음 본 것처럼 마음이 미어졌다. 20대까지 나에게 <첨밀밀>은 절절한 멜로 영화였다. 다시 보니 <첨밀밀>은 저마다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각자가 가진 인생관, 사랑관에 대한 이야기였다.



캐릭터 전사 상상하기

캐릭터의 전사와 후사를 상상하고 다시 써보려면 영화 속 캐릭터의 성격과 그가 한 대사를 바탕으로 그의 성장배경과 결핍, 콤플렉스, 외적목표와 초목표, 욕망과 야망을 분석하고 때로는 추리해야 한다. 작품에서 드러난 정보 외에 작품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 인물이 되어 상상해 보아야 한다.



첨밀밀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 이해하기

<첨밀밀>은 소군(여명)과 이교(장만옥)가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이주하는 1986년부터 1995년까지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들의 전사를 제대로 상상하려면 중국의 역사적 사건과 배경을 이해해야 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홍콩으로 이주했다고 가정한다면 이교와 소군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진행된 문화혁명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교와 소군은 중국이 공식적으로 1가구 1자녀 정책을 실시하기 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당시의 중국 출생률을 고려하면 형제, 자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두 주인공 모두 형제, 자매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므로 외동인 이유를 상상했다.



캐릭터의 성격과 대사에서 추측하기

-그 여자, 이교(장만옥) 이야기

이교는 엄마를 호강시켜주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한다. 나중에 아빠에게 연락한다거나 만나러 가려고 하는 걸 보면 부모님이 모두 계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보다 엄마를 특정해 엄마에게 좋은 집을 선물하고 싶다는 그녀의 대사를 통해 왜 유독 엄마를 강조하는지 상상해 보았다. 본토 출신 남자는 절대 만나지 않겠다는 이교의 대사와 다짐, 두려움을 통해 자라왔던 가정환경을 추측하고 엄마에게 품은 양가적 감정을 떠올렸다. 소군의 우유부단함에 상처받고 그를 믿지 못하는 것도 아버지를 닮아서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전사
한 자녀 정책이 시행되기 전이었지만 엄마는 나를 낳고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아들, 아들 거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성화와 구박 속에서 자랐지만 엄마는 나에게 괜찮다고 네가 딸이어서 더 좋다고 말해주었다. 우유부단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엄마를 지켜주지 못하는 아빠 때문에 엄마는 고단하면서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두 가지를 다짐했다.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그리고 엄마를 호강시켜주겠다고. 내 손으로 엄마를 좋은 집에 모시겠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동네에서는 답이 없다. 이기기 위해서는 싸움터를 바꾸고 싸우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어차피 하고 싶은 공부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제부터는 돈이나 실컷 벌어야겠다. 홍콩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던데, 거기로 가야겠다. 그래도 우리는 남부니까. 광둥어를 쓰니까 본토 출신 중에서 우리가, 내가 더 빨리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결핍과 약점
똑똑하고 야망이 있으나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며 독하게 일하고 투자도 열심히 하지만 위험을 분산시키고 제대로 투자하는 방법과 시장을 읽을 수 있는 지식과 통찰력을 가지지 못해 주가 폭락장에 재산을 다 잃게 된다.
 
안전하고 따뜻한 가정,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가정에서 자라지 못해 사랑을 믿지 않는다. 엄마처럼 살까 봐 두려워한다.



-그 남자, 소군(여명) 이야기

톈진에서 온 소군은 이교와는 다른 분위기다. 순박한 시골청년으로 이교처럼 신분상승이나 물질적 성공을 악착 같이 추구하지는 않는다. 부모님을 호강시키고 싶다는, 그 시절 가난한 청춘이 할 법한 이야기 대신 약혼녀를 데리고 와서 정착시키고 싶다는 대사를 한다. 다 같이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혹독한 가난에 시달린 것 같지 않고 나름 안온하게 성장한 것 같다. 부모님 대신 약혼녀를 안정적으로 살게 해 주겠다는 그의 목표는 자신의 욕망이나 목표라기보다 은혜를 갚는 사람의 태도처럼 보였다. 안온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이 소정이라는 약혼녀의 아버지 덕분이었다면, 여명의 대사와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다. 소군이 아버지를 언급하지만 소정의 아버지를 지칭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 부모를 잃어 효도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대신 그 마음은 소정에게 향한다. 딱히 어떤 것에도 욕망과 야망을 보이지 않는 태도는 자신의 것을 욕심내 보지 못한 사람의 마음처럼 보였다.


전사
아버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그래도 부지런한 엄마와 아버지의 친구 덕분에 굶지 않았고 따뜻한 울타리에서 지낼 수 있었다. 너무 일을 열심히 해서일까 얼마 후 엄마도 돌아가셨고 나는 아버지 친구네서 자랐다. 아버지 친구는 나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그 집에서 소정을 만나 오누이처럼, 친구처럼 지내다 연인이 됐다. 소정은 제대로 책임지고 싶었다. 홍콩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니까, 그곳에 가서 돈을 벌기로 했다. 홍콩에는 고모도 계시니까 그래도 빨리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

결핍과 약점
아빠를 문화혁명 때 잃고 그 후에 엄마도 잃었다. 아빠 친구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클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 것을 가져보지 못해 자신의 것을 강하게 욕심내거나 갈망하지 못한다. 우유부단하고 둥글둥글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다.

목표
자신을 키워준 소정의 아버지에게 은혜를 갚고 어릴 때부터 함께한 소정과 홍콩에 정착하는 것이 꿈이다.





첨밀밀의 다른 인물들

첨밀밀은 이교와 소군의 사랑이야기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홍콩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장만옥의 파트너로 나왔던 조폭 두목 표형, 외국 배우와의 하룻밤의 데이트를 평생 품고 살아가는 여명의 고모, 여명의 약혼자 소정까지 캐릭터의 성격과 인생관, 사랑관이 각기 달라 흥미로웠다.



-장만옥의 파트너, 표형

가진 돈을 주식으로 다 잃은 이교는 안마업소에 들어가 일을 시작한다. 몇 년간 고생하며 모았던 돈도 없고 여명과 헤어진 가장 힘든 순간, 그곳에서 표형을 만난다. 표형은 자신도 젊은 시절 사랑을 해보았고 장만옥처럼 신분상승을 하기 위해 아득바득 살아봤기 때문에 이교가 가진 욕망과 야망을 가장 잘 이해한다. 그는 이교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의 본질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전사
거리에서 자라며 지독한 가난을 증오했다. 절대 가난하게 죽지 않겠다고, 온몸에 주렁주렁 금을 두르고 죽겠노라고 다짐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거리에서 첫사랑을 만났다. 가장 순수한 시절  마음을 다해 사랑했지만 나의 가난으로 그녀를 끌고 들어갈  없었다. 그렇게 그녀를  손으로 보내주고 다시는 사랑할  없을 거라 생각했다. 거리에서 자리를 잡고 조직에서 점점 위로 올라가면서 수많은 여자를 만났다. 첫사랑처럼 사랑할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두목의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깨달았다. 이게 진짜 사랑이라고. 이렇게 원하고 욕망하게 되는 사랑은 처음이었다. 두목의 여인을 갖기 위해 조직까지 차지했지만 사랑은 시들고 공허해졌다. 사랑은 지나가도 다시 온다. 다만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랑이 오고 가도  시절의 내가 아니면 다시는 그와 같은 사랑을   없다. 그래서 사랑 대신 옆에 있을 사람이나 바꿔가며 만나며 살았다. 가는 곳마다 애인을 만들었다. 시절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이교와의 만남
조직의 보스가 되자 나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차피 나와 있으면 다들 위험해진다. 이렇게 살다 가면 되는 거지. 거리에서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그래도 성공한 인생이다 생각하던 그때 나를  닮은 어린 여자를 만났다. 징글징글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안달하는 뾰족뾰족한 여자. 자존심 강하고 스스로 헤쳐 나가려는 여자.  여자가 다시 보고 싶었다. 세상에서  말고는 무서울  없다는 여자를 웃게 만들려고 미키마우스를 문신해 갔다. 사는  힘든 건지 사랑이 끝난 건지 웃다가 서럽게 운다. 내가 지나온 가장 외롭던  시절을 그녀는 보내고 있었다. 서럽고 외롭고 비빌 언덕 하나 없던  막막하고 불안한 시절, 그녀는 그때의 나처럼 서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군과 이교 사이를 알게  
자리를 잡으면, 홀로  정도가 되면 당연히 나를 떠날  알았다. 예전보다  불안해하고  외로워 보이지만 내가 채울  없는  공간이 여전히 보인다. 소군을 보고 알아차렸다. 둘이 함께 바라보기만 해도, 같이  있기만 해도  눈에는 보였다.  둘은 내가 지나왔던  시절에 여전히  있다. 서로를 그리워하고 애달파하면서도 둘은 견디고 있었다.  둘이 언제까지 버틸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이교를 놓아줄 때가   같다. 어차피 조직도 위험해졌고 경찰도 쫓고 있으니 내가 떠나면  해결되지 않을까. 내가 놓친  시절을 이교는 붙잡을  있지 않을까.

-다시 돌아온 이교
자신이 가장 힘든 순간 옆에 있었던 사람이 나였기에 내가 가장 힘든  떠나지 못하겠단다. 사람들은 이교가 영악하고 욕심이 많다지만 아무도 이교를 모른다. 이교는 사람이 가장 힘들 , 외로울 , 위험할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여자 생각보다 어리석고 의리 있다.



-여명의 약혼녀 소정, 전사보다 후사가 궁금한 캐릭터

소군의 약혼자였던 소정은 전사보다 후사가 더 기대되고 상상되는 캐릭터였다. 소군에게 배신당하고 안전한 세계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여명이 남긴 편지를 읽으며 이글이글하던 눈빛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전사
모두가 가난한 시절, 가난 동네에서 자랐지만 그래도 당에서 입지가 있던 아빠 덕분에 나름 안온하게 자라며 발레와 중국무용을 배웠다. 부모를 잃은 소군과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 오누이처럼 지내다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소군은 나에게 친구이자 오빠이자 연인이다. 소군은 자신의 힘으로 서고 싶어 했다. 소군은 언제까지고  집에 있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고모가 홍콩에 있으니 홍콩에서 자리를 잡아 나를 부르겠다고 했다. 자상하고 착한 소군은 홍콩에서도 연락을 자주 했다. 어느 날부터 연락이 뜸했지만 일이 힘들어서라고 생각했다.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지  후에는 이전처럼 연락을 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나를 홍콩으로 불러 결혼식을 올렸다.

-후사, 소군이 떠났다
언제까지나 소군과 행복하게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차라리 톈진에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니 홍콩에 함께 왔더라면 달랐을 텐데. 어떻게든 함께 했어야 했다. 그토록 믿었던 소군의 배신에 치를 떨었다. 좋은 언니라 생각했던 이교와 그랬다니  용서할  없었다. 소군은 나에게 헤어지자고 했지만 이교는 조폭 남자 친구와 홍콩에서 사라졌다.  소문을 듣고 생각했다. 소군이 돌아와 용서를 빌어도 받아주지 않겠다고. 하지만 소군은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소군은 고모의 유산을 나에게 모두 주고 미국으로 떠났다. 너무도 소군 같은 선택이었다.  대단한 사랑, 나도   해봐야겠다. 안전한 세상이 없다면 나도 홍콩에서  다리로 서야겠다. 아무리 후회한들 지나간 시간을 돌릴 수는 없다. 홍콩에 와서 깨달았다. 안전한 세상이란 없다는 것을. 아빠가 만들어준 안락한 , 소군이 만들어  것이라 생각했던 따뜻한 가정은 이제 없다. 앞으로는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


-여명의 고모

소군의 고모는 하룻밤의 사랑을 평생 품고 사는 사람이다. 그녀가 그와 데이트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어지자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한다. 평생의 감정과 사랑을 하루에 다 소진해서 늙어버린 캐릭터. 다른 사람처럼 잊고 평범하게 다른 사람을 만나며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 계속 떠올랐다.


다들 커다란 꿈과 야망을 품고 이 섬에 온다. 미친 듯이 일하고 돈을 벌며 그렇게 우리의 청춘은 쇠잔해간다. 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일찍 홍콩에 왔으니까. 그 덕분에, 내 몸 뉘일 집은 살 수 있었다. 나도 치열하게 꿈을 좇을 때가 있었다. 미스 홍콩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모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집을 산 뒤에는 그 마저도 놓아버렸다. 커다란 꿈을 가지고 조카가 이 섬에 왔다. 저 아이는 꿈도 사랑도 다 가지면 좋겠다.

어떤 사람은 한 조각의 추억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자신의 모든 열정과 사랑, 감정을 한 번에 다 쏟아부어버리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난 평생의 모든 감정을 그날 쏟아부었기 때문에 하룻밤 만에 노인이 되었다. 그날의 추억으로 평생 사는 사람이 되었다.

홀든이 떠나고 사람들은 현실을 살아가라고 했다. 홀든과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기억하는 사람이 없자 사람들은 나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처음 몇 년 동안 홀든의 연락을 기다리며 행복했다 절망했다 감정이 널을 뛰었다. 그 후로 몇 년, 배신감과 서글픔에 시들어갔다. 나도 잊을 수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건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감정의 모든 실이 끊기고 나서 그때의 추억만 생각하며 살았다. 난 언제든 그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그 호텔이었다. 하룻밤이었어도 괜찮아. 그걸로 남은 생을 충분히 추억하며 살았다. 나중에는 오지 않는 것이 늙어버린 나를 보이고 늙어버린 그를 보는 것보다 가장 반짝이던 그때에 멈추어있는 것이 복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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