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름차차 Oct 13. 2022

팝업 창이 뜨는 사람

2022.10.13

언제부터인가 캐릭터, 이미지, 장면, 영상이 계속 떠올랐어요. 가장 어릴 적 기억은 유치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떠오른 한 장면입니다. 가본 적 없는 곳에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마치 텔레비전 드라마의 한 장면, 한 씬 처럼 탁 떠올랐어요.



그 후에도 아무 때나 팝업 창이 떠올랐습니다. 완성된 이야기는 네가 만들어라. 과제를 받은 것처럼 떠오르는 것들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혹시나 일종의 정신병이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해 심리학, 정신의학 책을 찾아 읽기도 했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에도 계속 떠오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 이런 저를 인정하지 않고 글 쓰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지 않으려 했어요. 



방금 완성한 시놉시스도 사실, 오래전에 떠올랐던 장면들입니다. 하지만 그냥 팝업 창처럼 캐릭터와 장면이 떠올랐을 뿐 주제의식도 클라이맥스도 없었어요. 그러다 자서전을 써보라는 과제를 받고 일주일 동안 회피하다 토요일 저녁, 주제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왜 그 주제가 떠올랐는지 깨달았습니다. 



진심으로 죽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 순간이라기보다 기간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확하겠네요.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자다가 심장 이상으로 잠에서 깼어요. 그때 알았어요. 지금 침대에서 일어나 나를 구호하지 않으면 나는 죽겠구나. 그렇게 몇 초 생각했어요. 그토록 죽고 싶어 했으니 죽으면 되지 않을까. 근데 심장이 더 옥죄고 고통이 심해지자 벌떡 일어나 몸을 움직이고 뜨거운 물을 마셨습니다. 



모태신앙이지만 믿음이 강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절로 기도가 나왔습니다.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죽을 기회가 있었지만 살려달라고 했으니 앞으로는 다시는 죽고 싶다 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몸이 이완되면서 스르륵 잠들었습니다. 



"생이 투쟁이 되면, 비로소 생을 갈망하게 된다."  



토요일 저녁 이 문장을 쓰고 자려고 누웠을 때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결국 자서전을 쓰라는 과제가 무의식 중에 저를 돌아보게 만들었고 그 덕분에 10년 동안 완성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플롯과 주제의식을 만들었습니다. 



맞아요. 저도 모르게 제 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였나 봅니다. 결국 우수하고 건강하고 성공하고 사랑받는 사람들만 살 가치가 있는 게 아니다. 살 가치라는 것은 결국 삶을 갈망하고 살고 싶어 하는 마음에 있다. 이걸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왜 그 시절 이 장면들이 떠올랐던 것인지 시놉시스를 쓰며 깨달았습니다. 제 무의식이 저보고 살라고 삶을 갈망하라고 팝업창을 띄운 것이었구나.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10년이 걸렸네요. 사실 그때 떠올린 이야기를 완성하지 않고 10년이 흘렀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장면, 이야기들에 다시 사로잡혀 그때 그 이야기는 묻어뒀거든요. 



저는 이 글을 완성해야겠어요.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쓰면 더 좋은 작품으로 완성해 낼 수 있다 해도 지금 완성해내서 그 시절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위로하고 싶어요. 작가님 덕분이라는 인사를 전하기 위해 길게도 썼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책이 기억하는 온도와 습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