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 30-31
제주도행을 결정했지만 다른 일 때문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덜렁 제주도행 편도 항공권만 결제하고 10월 29일이 되었다. 토요일이었지만 강의가 몰려있는 날이라 정신없었다. 미리 처리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렌터카와 돌아오는 항공권, 첫날 숙소를 예약했다. 성수기를 비켜간 일요일의 제주도는 출발 8시간 전에도 무엇이든 여유롭게 예약이 가능했다.
가을의 제주, 여행 짐 꾸리기
봄, 여름, 겨울의 제주도는 가본 적 있지만 가을의 제주도는 처음이라 어떻게 짐을 꾸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교차가 심하다는 말에 여름옷부터 초겨울 외투까지 같이 욱여넣었다. 외투만 4벌 (트렌치코트, 무스탕(?), 재킷, 가죽재킷)에 여름용 반팔 점프슈트, 반팔, 치마, 블라우스, 긴팔티, 청바지, 슬랙스 2벌을 챙겨 왔다.
여행 2일 차 밤에 소회 해보건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오름을 오르고 둘레길을 걷다 보면 덥고 땀이 나기 때문에 안에는 반팔을 입고 외투를 걸쳤다. 오후가 되면 쌀쌀해지기 때문에 차에서 다른 외투를 꺼내 바꿔 입었다. 노을은 항상 무스탕을 입고 봤다. 온도에 따라, 바람에 따라 외투를 바꿔 입기 위해 차량 뒷좌석에 외투를 모두 놓고 다녔다. 뒷좌석에 쌓아둔(?) 외투 사진을 보고 친구가 놀려댔지만, 다양한 두께의 외투를 모조리 챙겨 온 덕분에 일교차에 굴하지 않고 컨디션을 지키며 잘 다니고 있다.
여행 컨셉, 걷기와 일하기
제주도를 여행할 때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오름에 들른다. 이번 여행도 매일 오름에 올랐다. 억새로 가득한 오름을 오를 때마다, 오름 정상에서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스케줄을 밀고 당긴 보람을 느꼈다. 야금야금 지금 당장 행복해지겠다는 다짐처럼 오랜만에 너른 풍경을 눈에 담고 행복했다.
여행 욕심이 많은 탓에 천천히 다니지는 못했다. 1일 차에는 다랑쉬오름 정상에 다녀오느라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베지크루즈의 팝업 레스토랑에 들렸다가 이 악물고 산굼부리도 다녀왔다.
2일 차에는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호텔 주차장에서 오늘 묵을 숙소를 예약했다. 지인들에게 추천받은 곳과 전에 들르지 못한 곳, 가을의 정취가 느껴지는 곳을 구글 지도에 저장하고 그걸 보며 동선과 숙소 위치를 정했다.
산방산과 황우치 해변 사이에 있는 <원 앤 온리> 카페에 앉아 햇볕을 쬐며 행복했다. 송악산 둘레길을 걸으며, 오늘의 일몰을 보며 행복했다. 호텔 편의점에서 야식으로 산 짜파게티를 호텔 로비에서 먹으며 행복했다.
몇 달 치 행복을 하루에 느끼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일과 마감이 쌓여있지만 잠을 줄여 처리하고 일단 떠나왔다. 제주도에서도 일몰을 보고 숙소로 돌아와선 회복용 잠을 짧게 자고 일어나 다시 의자에 앉았다. 여행지에서도 4시간 정도는 일을 하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혼자 떠나온 여행이라 가능한 것이었겠지만 여행과 일을 병행하며 시간을 알차게 채워 쓰는 기분이었다. 테이블 높이가 안 맞아 다른 화장대나 서랍장에 올려놓고 작업하면서도 행복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하다는 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