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1-22
기어이 편의점에 다녀와 허니버터칩을 입에 물었다. 마감을 앞두고 하는 루틴(?)이 있는데 보통 허니버터칩과 밤새기로 끝이 난다. 허니버터칩을 먹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어차피 해야 할 마감인데 왜 매번 이다지 방황을 하는지 모르겠다. 해야 할 일을 앞두면 언제나 다른 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각종 뉴스와 기사에도 눈이 돌아가고 각각의 사건과 이슈마다 논술 준비하듯 생각을 담게 된다. 뜬금없이 몇 개월, 몇 년 동안 보지 않았던 지인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고 한 번도 거슬리지 않았던 집안 곳곳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방문을 닦거나 서랍을 정리한다. 당장 급하지 않은 물건을 구매하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으로 정해놓은 가짜 마감일정들을 스쳐 지나가고 나면 당장 내일이 마감인 날이 온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그러면 터덜터덜 아파트 상가 지하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맹렬한 추위에 손이 시려도 허니버터칩 2 봉지(오늘 먹을 것 한 봉지, 내일 먹을 것 한 봉지)를 품에 안고 돌아와야 한다.
짜고 달달한 허니버터칩을 녹여먹으며 생각한다. 아!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구나. 당장 오늘 밤을 새우지 않으면 방점을 찍을 수 없겠구나. 이 시기쯤 오면 사실 마감해야 할 원고의 질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마감 그 자체만 남게 된다. 어쨌든 약속한 분량을 채워 넣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소명이 된다.
결국 브런치도 마감 회피와 루틴의 하나로 돌고 돌아 찾아왔다. 이거라도 타닥타닥 타이핑하다 보면 다른 원고도 써 내려가겠지 하는 주술적인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