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9
쪼개 읽기
난 본래 책을 쪼개서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쪼개서 하루에 4-5권의 책을 읽는다. 오늘 읽은 책은 홍콩 사회파 추리소설 <13.67>, <정리하는 뇌>, <10년 차 디자이너에게 1:1로 배우는 편집디자인 강의>, <인디자인 북디자인>,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 그리고 소논문 1편도 쪼개서 읽었다.
예전에 나는 몰아 읽기를 했다. 한창 철학도서를 읽을 때에는 몇 권을 빌려와 쌓아 두고 며칠 동안 그것만 읽었다. 그다음에는 소설을 쌓아두고 읽었다. 소설도 추리소설을 몰아 읽다, sf를 몰아 읽다, 한국소설을 읽다, 러시아 소설을 몰아 보고, 일본 소설을 봤다. 몰아서 4-5권 읽고 나면 질려서 다른 분야로 넘어가서 읽는다. 그랬던 내가 쪼개 읽기를 시작한 이유는 여러 개의 발전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활자 뒤로 숨는 것을 택해왔다.
가장 게으를 때, 가장 열심히 살지 않을 때,
책을 가장 열심히 읽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시험과 관계없는 책들을 그렇게 읽어 댔다. 독서실에서 수험서적이 아닌 책을 쌓아 놓고 몰입해 보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무엇인가 선택해야 할 때도 나는 선택을 지연한 채, 계속 책만 읽었다. 누군가 책에서 해답을 찾고, 책을 통해 성장할 때 나는 책으로 도망치기만 했다. 매일 해야 하는 일상의 과제조차 독서로 미루기만 했다. 이런 나의 성향을 알기 때문에 나는 올해부터 책으로 도망치지 않기 위해, 책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쪼개서 읽는 중이다.
너무 많이 쪼개 읽는 것은 뇌에 도움되지 않는다. 이제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습관을 들이고 여러 개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위해 일단 예전의 나에서 벗어나는 훈련부터 시작하였다.
사회과학적 모드와 스토리텔링 모드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여러 모드의 내가 필요하다. 사회과학적 글쓰기 모드가 필요할 때가 있고 문학적 글쓰기, 스토리텔링 모드가 필요할 때가 있다. 모드 전환은 다음 문제고, 일단 모드가 형성되어있어야 한다. 나에게 모드는 일종의 산출 상태를 의미한다. 아웃풋이 나오려면 인풋이 있어야 한다. 사회과학적 글쓰기, 감각, 논리구조 만들기에 익숙해지려면 나는 사회과학 도서와 논문을 조금씩이라도 읽어야 한다.
스토리텔링 모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설을 쓰고 싶으면 소설을 읽어야 한다. 에세이를 쓰고 싶으면 에세이를 읽어야 한다. 내 뇌와 감각을 그 모드에 맞추기 위해선 읽고 삼켜야 한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가장 많이 소비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생산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세운 원칙은 문학 1권, 사회과학도서 및 다른 분야 책 1권 매일 쪼개 읽기이다. 여기에 인디자인 독학이라는 목표가 추가되어 인디자인, 편집디자인 관련 책도 함께 읽고 실습하는 중이다. 책 속 작은 이미지로라도 그림을 보면 숨이 트이지 않을까 해서 잠시 쉴 때, 다른 과제로 넘어갈 때 몇 페이지씩 읽고 있다.
쪼개 읽기를 하며 여전히 나는 계속해서 이 책을 마저 읽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책을 덮고 물을 마신다거나 자리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며 그 욕망을 지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