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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름차차 Mar 24. 2022

글을 부르는 마중물

2022.03.24

고통 없이 글을 부르기 위해선 내가 쓰려는 글과 동기화 되어있어야 한다. 어느 매체든 장르든, 주제든 쓰려던 글에 맞춰 생각이 미리 그 곳에 가 있으면 바로 타이핑을 시작할 수 있다. 글쓰기를 위한 사고 동기화는 좋은 글을 읽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전업 작가 중 몇몇은 자신의 글을 쓰기 전 고전을 필사 하기도 한다. 양서를 읽고 한두 문단을 필사하고 바로 자신의 글로 넘어가는 것이다.


마중물 독서는 글을 불러오기 위한 것이니 다른 글을 읽는데 모든 시간과 감정을 다 쏟으면 안 된다. 한 권을 다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챕터나 몇 문단을 읽고 내가 예열된 것 같다 싶을 때 바로 글 쓰기로 넘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미리 노트북을 켜서 파일을 불러와서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내가 시작할 곳 앞에 커서가 깜빡이고 있어야 한다.  읽든 필사하든 다른 사람의 활자를 마중물로 흘려보내고  자신의 활자를 쌓아가기 시작해야 한다.



소설의 마중물과 동기화 과정

소설을 써야 한다면 다른 소설을 읽어 동기화시킨다. 장르를 맞추거나, 내가 쓸 공간, 시대의 배경과 일치하는 것을 찾아 읽는다. sf 단편을 준비할 때, 나는 죄책감 없이 실컷 sf소설을 쌓아두고 읽었다. 그 덕분에 공모전 마감 당일 단편을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아이템과 글감이 있는 상황이라 가능한 것이었지만 sf소설에 동기화되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오감을 살려주는 마중물,

시대가 공간이 가까운 소설

나는 서사를 풀면서, 공간과 시대에 대한 감각적 묘사는 세밀하지 못하게 그저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곳의 소리, 냄새, , 촉각, 맛을  혼자 느끼고 글로는 쓰지 사건만 쓰고 말았다. 그런데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을 배경으로  소설이나, 시대적 배경이 비슷한 것을 읽고 쓰면 무엇보다 오감 묘사가 살아난다. 다른 소설이 나를 이미  공간으로  시대로 데려다 주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문을 열고 내가 만든 세계로 넘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묘사해 내면 된다.


요즘 라틴아메리카 배경의 동화를 쓰며 <백년의 고독> 다시 읽고 있다. 소설을 쓰기  <백년의 고독> 한두 챕터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훨씬 수월해진다. 이미 내가  공간에 들어가 글을 불러오는 기분이다. 촉수가 살아나 예민하게 모든 감각을 동원해 글을 쓰게 된다.




에세이와 칼럼의 마중물,

주제가 다른  그리고 김훈 작가의 문장

에세이나 칼럼도 마중물로 다른 사람의 글을 읽어 동기화하는데, 대신 이때는 다른 주제의 것을 읽는다. 동일한 주제의 에세이나 칼럼을 읽으면,  방금 읽은 그 글이 내 생각을 주도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일부러 다른 주제를 찾아 읽는다.


아니면 아예 김훈 작가의 책을 읽는다. 에세이나 칼럼은 문장력이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문장력을 불러오기 위해 김훈의 책을 읽는다. 내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 김훈 작가의 책을 아무 곳이나 펴서 10페이지 정도 읽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 문장이 방금 전 보다 훨씬 좋아진다.



논문을   마중물,

같은 전공 다른 주제 논문 

이것은 문학이나 에세이 외 논문 쓰기에 적용해도 도움된다. 논문을 써야 하는 사람이라면 해당 논문을 위한 참고문헌을 찾아서 읽어야겠지만, 마중물 독서는 반드시 동일한 주제일 필요는 없다. 예열을 위한 독서는 오히려 다른 주제일 경우 효과적이다. 같은 전공이어도 필드가 다른 논문을 소설 읽듯 하면 논문 모드에 돌입하기 쉽다. 써야 하는 소논문 주제에 맞춰 쌓여있는 참고문헌을 읽자니 벌써 지칠 수 있다. 오늘 당장 써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 마감이 좀 여유롭게 남아있다면 전혀 다른 전공의 논문이나 사회과학 도서를 하루에 한 챕터씩 읽으며 사회과학 글에 뇌를 익숙하게 만드는 것도 도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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