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름차차 Apr 12. 2022

나는 당신의 최고 버전이 보입니다

2022.04.12

오늘 켈리 최의 라이브 영상을 뒤늦게 시청하며 청사진 시각화를 시도해보았다. 영상에서 안내받은 그대로 환경을 만들고 눈을 감으며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최고 버전의 나를 청사진처럼 떠올렸다.



나는 당신의 최고 버전이 보입니다

청사진 시각화를 한 것 때문인지 브런치를 작성하려고 페이지를 클릭한 순간 주변인의 청사진도 함께 떠올랐다. 타고난 오지랖 때문인지, 그들에 대한 애정 덕분인지 나는 최고 버전의 그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어느 날 한 후배가 외국에서 아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꿈에 나왔다. 꿈에서 깬 다음 그 후배를 대신해 벅차올랐다. 그 후배가 하는 일, 살고 있는 모습, 행복해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 이야기를 후배에게 전해주었을 때, 후배는 기뻐하면서도 이내 우울해했다. 어떻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 꿈꿨던 라이프 스타일을 그대로 꿈으로 꿀 수 있는지 믿기지 않아 하면서도 현재의 자신과 너무 멀리 있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후배의 사적인 이야기까지 자세하게 할 수 없지만 분명 그것은 그 친구가 그토록 원하는 청사진이었다.


누군가의 청사진 시각화를 대신했던 그날이 떠오르자 얼마 전 통화 한 대학 동기도 함께 생각났다. 그 친구는 전업을 꿈꾸고 있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한 적은 있었지만 무엇을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3년 만에 처음으로 창업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창업에 성공해 즐겁게 일하는 친구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너무 생생해 상상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온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친구는 이내 마음을 접으려는 듯 창업 아이템의 단점과 수익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친구의 성공과 행복이 보이는데 왜 시도를 하지 않으려 할까. 내 눈에는 분명 그 친구의 센스와 사업적 안목이 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안정적인 수입을 포기하고 창업을 시도하기 부담스러워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려 해서 안타까웠다. 겸손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습관적인 말의 태도. 그것이 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 그래서 바로 창업지원 제도에 대해 말해주었다. 한 번도 창업하지 않은 사람이 창업 준비를 하고 사업기획안이 통과되면 1억까지 대출이 아니라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바로 회사를 그만두라는 것이 아니라 1년 동안 조사 하고 사업기획안을 준비하고 관련 역량을 키워나가자고 했다. 1년을 준비하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한 지 10일 정도 흘렀다. 친구는 내가 지나가듯 한 말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가장 행복해하는 친구의 모습을 본 이상 그저 내뱉은 말로 그칠 생각은 없다. 그 친구가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계속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만나서 함께 사업기획서를 써볼 생각이다.



최고버전의 나를 마주했을 때의 서글픔

그들은 최고 버전의 자신에 대한 청사진을 이야기하면 즐거워하다가도 이내 씁쓸해 한다. 너무 푸른 꿈이라 아쉬워서인지, 덮어두려 했던 마음속 깊은 꿈을 타인에게 들켜서인지, 현재와 너무 멀리 있는 꿈이라 그런 것인지 시작도 하기 전에, 꿈꿔보기도 전에 부정적인 생각으로 그것을 지워버린다.


우리는 각자 삶의 짐을 짊어지고 있다. 그 짐 때문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스스로 모를 때가 있다. 그래서 자신 보다 몇 걸음 떨어져 있는 사람이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 나는 그들의 적성과 가능성을 하나하나 계산해서 계획하듯 그들의 최고 버전을 분석해 그려낸 것이 아니었다. 알고 지내며 봐왔던 모습에서 각자의 가능성과 적성, 취향, 라이프스타일, 진정으로 원하던 꿈을 어느 순간 한 장면으로 떠올린 것이었다.


가족의 기대와 이제까지의 사회 통념 때문에 자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과거에 자신이 했던 선택으로 인해 더이상 새로운 길을 시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세상은 바뀌고 있고 뒤늦은 결정이란 없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저 말로만 그치는 것 같아 쉽게 전달하기 어려웠다.



함께 꿈꾸고 이루어가기

우리는 제대로 꿈 꾸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누군가의 기대와 시선, 생각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꿈을 인정하지 못하고 최고 버전의 내가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아주 오랫동안 부정했던 꿈을 겨우 인정한 것이 올해다.  청사진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꿈을 온전히 인정하고 제대로 꿈꿀  있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일단 그곳에 가려면 꿈이라도 꾸어야 한다. 아끼는 친구와 후배도 함께 꿈꾸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꿈만 이루려고 하기보다 함께 꿈을 이뤄나갈  있도록 그들에게 시간과 마음을  써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기부여 콘텐츠 내 것으로 만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