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가 쓴 그림 에세이를 읽고 있다. 섬에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다. 조각가가 쓴 에세이는 중고 서점에서 샀었다. 상태가 워낙 좋아서 새 책 같았다. 어제 새벽부터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잠이 들면 새벽에 책을 읽는다. 오늘도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어야만 아는 것들이 있다. 새 책 같은 이 책에서 딱 찢겨나간 한 장의 종이. 중고로 팔기 전에 꼭 갖고 싶었던 페이지였던 걸까. 그 페이지에 잊지 못할 전화번호라도, 기록이라도 남겨둔 걸까. 어째서 딱 그 페이지만 찢겨나갔을까. 내가 구입한, 너무나도 깨끗한 이 책이 중고였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읽었었던 책을 이어받아 읽고 있음을 각성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부분의 제목이 궁금해서 목차를 다시 들여다본다. 「떠나는 사물들」. 떠나는 사물들에 관한 조각가의 글은 어떤 글이었을까. 조각가에게 떠나는 사물들은 어떤 사물들이었을까. 그 글의 어떤 부분을 매만지고 싶어 찢어버렸던 걸까. 찢겨나간 글 옆에 조각가가 그린 그림이 남아있다. 그림의 제목은 「모든 것은 바람 속에 있다」. 기어코 작은아버지는 바람 속으로 흘러가셨다. 나는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떨궜다. 작은아버지 덕에 결혼식 때 보고 못 봤던 친척들을, 사촌들을 볼 수 있었다. 작은아버지 덕에 1년 만에 섬에 갈 수 있었다. 작은아버지의 작은 키가 반듯이 누워 있던 오후. 그 오후 속으로 울음을 다 떠넘기고 섬 밖으로 나와 버려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새 책을 사서 찢겨나간 페이지를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