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해를 살아온 개가 하늘로 돌아갔다. 여름날, 동생이 시내의 어떤 거리에서 우연히 구조해온 강아지. 말하자면, 똥개라고 불리는 개들만 키워왔던 고향 집에 그렇게 생긴 개는 처음이었다.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데리고 왔다는 동생. 부모님은 집안에서 개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난감해하셨다. 나는 마땅히 갈 데가 없는 강아지를 자취방에 데리고 와서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동물병원이라는 곳도 가보고 예방접종도 해봤다. 인터넷으로 개의 사진을 비교해보며 어떤 품종인지도 알게 됐다. 외출했다가 자취방으로 돌아오면 꼬리치며 반가워하던 털복숭이 강아지. 남편과 연애하던 중이어서 우리는 강아지와 뛰어다니며 청춘의 한때를 즐겼다. 6개월쯤 지나서 강아지와 비행기를 타고 고향 집에 갔다. 보잘것없이 왜소하고 약해 보이기만 했던 아주 작은 강아지가 조금 더 커서 반짝반짝 윤이 나고 까맣고 선한 눈빛으로 발라당 누워 애교를 피우니, 엄마가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강아지는 특히 아빠에게 더 살갑게 대했는데, 애교 없는 딸들이 범접할 수 없는 아빠의 품까지 강아지는 파고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강아지는 고향 집에서 열아홉 해를 살았다. 애인이 남편이 되고 내가 아이 엄마가 되는 시간 동안 개는 우리를 잊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두 계절에 한번 고향 집에 가더라도 아이는 단번에 달려와 한참을 안겨 있곤 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손을 잡고 데리고 온 내 아이들도 사랑해줬다. 며칠 전에 엄마는 아무것도 못 먹는 개를 데리고 영양제라도 맞혀봐야겠다고 동물병원에 다녀오셨단다. 힘이 없어서 다 맞추지도 못하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마저 맞혔단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후회할까 봐 그러셨단다. 그리고 어젯밤에 하늘로 갔다. 일주일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개. 일주일을 버티다 여름 속으로 돌아갔다. 여름에 와서 여름에 갔다. 자식처럼 키워온 개가 있었던 자리를 엄마는 한참 동안 바라봤을 것이다. 나는 싱크대 앞에서 주저앉아 아주 잠깐 글썽이다 말았다. 아이들이 금세 나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엄마, 엄마 자주 불러준다. 그래서 슬픔도 아주 조금씩만 내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