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강릉에 갔다. 강릉.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지만 늘 갔던 곳인 것처럼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강원도까지는 꽤 멀고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쉽게 결심하지 못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차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었다. 섬에 살 때는 특별히 바다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몇 년 전부터는 섬 바다가 그리울 때가 있다. 바다가 있는 도시로 여행을 가봤지만 섬 바다와 달랐다. 헛헛해졌다. 아이들의 외가에 가기로 한 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어서 강릉에 갔다. 차에 오래 타면 금세 지루해져서 “아빠, 언제 도착해?” 묻는 아이들이지만, 가기 전엔 차에서 놀 거리와 먹거리를 챙기며 충분히 설렌다. 숙소는 바다와 가까웠다. 평소에도 새벽에 일어나는 남편은 새벽마다 바다를 보러 갔다. 말을 타고 바다 산책을 하러 온 남자도 봤다고 했다. 새벽, 동터오는 아침 해가 밝히는 바다 풍경이 얼마나 근사한지 한참을 이야기하고 사진을 보여주는 남편. 큰딸에게 새벽에 일어나 같이 가자고 했다. 딸아이가 끄덕인다. 늦게까지 놀다 잠든 아이는 아빠가 발가락을 만지며 깨우는 소리에 얼른 일어난다. 아빠를 닮아 아침잠이 없고 약속을 잘 지키는 딸아이. 아침잠이 많지만 오후에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나도 눈곱을 떼며 겨우 일어나본다. 어둑어둑 파도 위로 해가 맨 밑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침을 시작하려는 듯 파도는 아름답게 일렁인다. 우리 셋은 점점 밝아오는 기운을 느끼며 또렷해지는 서로의 이목구비를 바라보았다. 아침이 되는 순간은 짧고 강렬했다. 강릉의 바다는 섬 바다와 많이 닮았다. 멀리 있어서 소중하고 만질 수 없어서 푸르렀던 바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아침잠이 많은 둘째 딸이 아직 자고 있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컵라면을 먹었다. 새벽에 일어나 라면을 먹는 것도 강릉에서만 어울림 직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