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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미 Aug 24. 2021

오늘의 구름



   

   십오 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해온 외장 하드가 무용지물이 됐다. 어제까지 잘 되던 외장 하드가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기척도 없이 사라져버린 시와 사진들. 그리고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기록들. 다른 외장 하드에 복사해놓은 것들도 있지만 전체를 다 해놓은 것은 아니었으므로, 기억나지 않는 기록들은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었다고 믿기로 한다. 그래야 정말 사소한 일이 될 것 같다. 숱한 글자들과 이미지에 둘러싸였던 지난날. 하루아침에 곁에서 사라져버린 것들로, 홀가분하면서도 적적하다. 인사를 나눌 겨를 없이 기차에 올라 타버린 사람처럼, 나는 기진맥진하다. 시인이 되고 싶어 자취방에 엎드려 썼던 시들. 어차피 시집 속에 묶이기엔 어설프고 지독히 감정적인 시에 불과하지만, 그 시들이 있어 나는 시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인이 되고 싶어서 혼자 눕고 혼자 밥해 먹던 그 방의 시간이 구름 속으로 흘러 흘러 가버렸다. 휴, 모든 이별은 이별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 걸까. 외장 하드를 복구하는 비용이 내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비용이라면 나는 이 모든 것에서 손을 놓고 자유로워져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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