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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미 Oct 24. 2021

오늘의 구름




   시집 계약을 했다. 11월에 첫 시집이 나온다. 노트북과 외장 하드에 저장되어 있는 시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면 어떻게 하나, 불안을 위한 불안이 이따금 내 몸에서 생겨 나왔다. 세상에 내놓지 못한 음악과 그림과 글은 왜 이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만 감당하기엔, 감당해야 할 무게가 벅찰 때가 있다. 가슴 안에 두기만 한 것들은 혼자 부풀어져서 괴상한 괴물처럼 변형되기도 한다. 세상에 내놓으려고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에 내놓지 못해서 자꾸 쓰다듬게 되었다. 몇 번이고 쓰다듬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조금 곪았고 조금 덧났다. 세상으로 던져버리면 이제 내 것만은 아니니까,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시 중에서 48편의 시를 창밖으로 던진다. 이제 내 시들이 훨훨, 밤의 구름 속으로 사라져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빛났으면 좋겠다. 뾰족한 발톱에 할퀸 적 없는 어여쁜 토끼처럼,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얌전하게 웅크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 옆에 앉아 내 시를 읽어줄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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