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 9

by 강윤미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의 키키는 열세 살의 수습 마녀. 익숙한 마을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야 한다. 진정한 마녀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마녀의 숙명. 키키는 정착하게 된 도시에서 소질과 적성에 맞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바로 사람들의 물건을 배달하는 일이다. 얼결에 시작된 빗자루 택배. 마녀 배달부 키키는 부지런히 빗자루를 타고 청어 파이를 전달하고, 생일 선물을 전한다. 사람들의 진심을 전하던 어느 날, 잘 되던 마법이 거짓말처럼 되질 않는다.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이란 말이 있다. 작가가 글을 쓸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작가가 맞닥뜨린 블록 같은 벽은 소화되지 못해 몸 밑바닥에 머무른 체기 같은 것일지 모른다. 키키의 화가 친구 우르술라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순간에는 오히려 미친 듯이 그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도 안 될 때는 낮잠을 자고 산책하라고 키키에게 조언한다. 그리는 걸 포기했을 때 다시 그리고 싶어지는 순간이 마법처럼 온다고 말이다.


책 한 권을 내고 나면 나는 마치 한 번도 글을 써보지 않은 사람처럼 두려워진다. 어떤 글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이 엄습한다. 작가는 내가 쓰게 될 미래의 문장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우르술라가 말한 ‘마녀의 피, 화가의 피, 제빵사의 피’라는 대사에서, 나는 ‘피’라는 강렬한 단어에 한동안 매혹되었다. ‘피’라는 것은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것이고, 어쩌면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느냐는 이미 결정된 것인지 모른다. 나는 시인의 피를 가지고 태어난 걸까. 시인의 피를 가진 나는 ‘마녀의 피’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시의 몇 문장을 데리고 온다.


시의 핏줄을 누구에게도 받지 못한 마녀가

마녀의 피를 버리고

시를 쓰고 싶다는 자의식이 처음 생겼던

저녁


하늘로 날아간 마녀는

마녀만 볼 수 있는 언어를 주워 오고

언어는 구름과

노을과 빗줄기와 섞인다


시가 된다




2025. 12. 7 방송.



전주 MBC FM 99.1 MHz, <블루 레코드>방송. 일요일 오후 6시.

<러브레터>라는 코너를 통해 강윤미 시인이 쓴 짧은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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