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이라는 이름도 어여쁜 곳에 외가가 있었다. 그 시절의 애월은 대형 카페도 없었고, 관광객도 많지 않은 소박한 마을이었다. 외할머니가 해주셨던 음식 중에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돼지고기를 넣은 미역국이다. 맞다. 소고기가 아니라 돼지고기를 넣은 미역국이다. 돼지고기를 넣은 미역국이라니, 처음 들은 사람은 질겁할지도 모른다.
설날이나 외할아버지의 기일이 되면 찾아올 친척 없는 단출한 외가에 모여 우리는 돼지고기 미역국을 먹었다. 돼지고기를 넣고 뭉근하게 끓인 미역국. 국물이 비계 색깔로 우러나와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던 음식. 나는 외가에 가면 돼지고기 미역국을 먹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워서 뜨거운 김이 폴폴 나는 그릇에 부지런히 숟가락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웬걸 정말 맛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싼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넣었던 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그것은 손주들에게 대접할 수 있는 최선의 음식이 아니었을까. 가난한 집에 고기만큼 귀한 음식은 없으니까.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여쭤볼 걸 그랬나 보다. 글을 쓰다 보면 나는 과거의 것들이 대책 없이 궁금해진다.
이제 애월에는 외할머니도, 외할머니가 살던 작은 집도 없다. 애월에 못 가본 지 꽤 됐다. 섬 곳곳에 대형 카페가 생겨나고, 관광객이 넘쳐나서 내가 살던 섬이 아닌 것만 같다. 섬은 낯설어졌다. 하지만 ‘돼지고기 미역국’이라는 음식이 여전히 내 기억에 있어서 외할머니가 있던 나의 애월은 아직 존재한다. 음식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먹을 땐 모르는데 시간이 흐르면 내가 먹은 건 음식이 아니라 그때의 시간과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앙상하게 말랐던 외할머니의 마지막 얼굴과 손가락이 내가 부지런히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였다는 걸 상기시킨다. 잎사귀를 모두 비워낸 겨울나무처럼 외할머니는 정갈하게 떠나가셨다. 가만가만 내가 받았던 사랑의 형태들을 어루만져본다.
2026. 1. 11 방송.
전주 MBC FM 99.1 MHz, <블루 레코드>방송. 일요일 오후 6시.
<러브레터>라는 코너를 통해 강윤미 시인이 쓴 짧은 에세이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