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이

보르게세에서 읽는 시 3

by 강윤미
아무것도 없이.jpg 그림 JAB KIM



아무것도 없이



강윤미



밀란 쿤데라를 모르고 체코에 간다

바흐를 모르고 독일에 간다


체 게바라를 모르고도 쿠바에 갈 수 있다

로맹 가리를 모르고도 프랑스에 갈 수 있다


뭉크가 싫어도 노르웨이로 떠날 수 있고

비틀스가 싫어도 영국으로 떠날 수 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누구의 품에 안기게 될지 모르고 태어난 것처럼


내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게 되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이름을 쓰게 될지 모르고

몸 밖으로 빠져나온 것처럼


발가벗겨진 채 울어대는 사물이었던 날

유일한 안식이었던 탯줄이 잘린 날


나의 처음을 나는 알지 못하고

나의 감정을 내가 고르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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