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게세에서 읽는 시 5
강윤미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림 하나 걸려 있다
물감을 짜놓은 듯 어둠이 질퍽하다
다시 물감이 마르듯 달빛이 딱딱해진다
너는 사과와 접시와 유리병으로 이루어진 정물화
나는 꽃과 연못과 구름의 얼굴을 빌린 풍경화
너는 마음에 든 탁자 위에 하얀 식탁보를 깔고
사과와 접시와 유리병의 위치를 정한다
꽃과 연못과 구름이 있는 공원으로 간 나는
액자와 어울리는 오전 11시를 고른다
너에게는 사물의 각도에 따른
그림자와 어둠의 밀도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햇빛이 비치는 각도와
풍경의 감정을 눈여겨볼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네가 남겨놓은 고요를 배우며
사물은 사물로 완성되어간다
시간의 원근법, 내 붓은
풍경으로부터 벗어난 풍경이 된다
사람들은 네가 선택한 사물이 상징하는 의미를 찾으려
눈을 붉힌다 내가 선택한 풍경 속에서
피로한 눈빛을 쉬게 한다
너를 이해하는데 나의 언어가 필요하고
나를 이해하는데 너의 언어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빗나간
액자 밖의 시간이 절실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 언어로 그리다 만
벽 하나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