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다음엔 무엇 9
한때 해금 소리를 좋아했다. 소리 날 것 같지 않게 생긴 것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했고, 그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참 신기하다고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해금 연주 음반을 틀어놓고 해금이 없는 곳에서 해금 소리가 들리는 상상을 했다.
창호지를 바른 옛날 문을 바람이 흔드는 것. 문틈으로 걸쭉한 질감의 바람이 방 안 공기를 한번 휘감는 것.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이 바람의 과거와 현재를 느끼게 하는 소리.
목소리가 허스키한 사람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 성악 발성법을 배워보지 못한 사람이 ‘오늘을 오늘답게’ 부르는 것. 그래서 매번 다르게 느껴지는 마음.
검은색 스크래치 북에 날카로운 것으로 긁으면 긁은 부분에만 드러나는 알록달록 빛깔. 그늘 속에 잠긴 손바닥 지문 안으로 비로소 들어오는 한 줌 빛.
구멍이 아무렇게나 푹푹 뚫린 검은색 돌멩이가 가득한 고향 바다를 걷는다. 해금 소리가 들릴 때만 파도가 하얀 속내를 보이다 도망친다. 울퉁불퉁 돌멩이의 구멍 속으로 해금 소리가 젖어 든다. 마음이 일렁이며 물결 곁으로 가서 앉는다.
해금을 연주하는 사람과 잠시 같은 차에 탄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너무 무겁고 비장하게 말해버렸다.
“죽기 전에 꼭 해금을 배워 보고 싶어요!”
좋아하는 것을 따라 내뱉고 싶은 말들이 바뀌는 때였다. 감성과 감정에 따라 흔들리기 좋아하고 그것을 즐기던 스물 몇 살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