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다음엔 무엇 24
낮고 깊은 질감의 색을 칠하며 불어오는 바람의 계절이 오면 귤이 생각난다. 지극히 3인칭 시점에서 귤을 떠올리고 구매자 입장에서 귤을 살피고 가격을 확인한다.
1인칭 시점에서 귤을 만지고 냄새 맡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우리 집도 작은 미깡 밭을 갖고 있었다. 제주 사람들은 귤 밭을 ‘미깡 밭’이라 부른다. 하얀 꽃이 피고 초록색 알맹이가 점점 커져서 샛노랗고 주홍빛으로 변할 때까지 귤을 지켜보았다.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나무 하나에 매달려 전정가위로 귤을 땄다. 나무 하나에 그렇게나 많은 귤이 열렸을 줄은 몰랐다. 알면서도 매번 모르고 시작하는 일. 그래서 가을이 오면 부모님을 따라 귤 밭에 갔다. 맨 꼭대기에 있는 귤은 나뭇가지를 내 가슴 쪽으로 잡아당겨 귤을 딴다. 맨 아래쪽에 매달려 하마터면 잊고 지나갈 뻔했던 귤은 웅크려 앉아서 나무 밑에 들어가서 딴다. 나무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중간에서 아래쪽으로 중간에서 다시 위쪽으로 가면서 딴다. 귤이 노랗고 주황색인 이유는 잊지 말고 자기 좀 데리고 가란 뜻이다. 과일이 알록달록 말을 건다.
바구니 가득 귤이 차면 콘테나에 옮긴다. 다시 귤을 바구니 가득 채우고 콘테나에 비운다. 반복하면 저녁이 온다. 콘테나에는 귤과 작은 잎사귀들이 같이 들어가기도 하고 전정가위 때문에 상처가 난 귤이 들어가기도 한다. 귤이 가득 찬 콘테나가 아파트처럼 쌓여간다. 창고 안에 귤이 가득하다.
귤을 다 따고 나면 콘테나에 있는 귤을 부어 썩은 귤, 상처 나거나 모양이 볼품없어 상품성이 떨어지는 귤을 골라낸다. 이렇게나 많은 귤이 한꺼번에 한 장소에 모여 냄새를 피운다. 분명 귤 냄새가 엄청났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때의 귤 냄새는 기억나질 않는다. 귤 냄새를 맡기도 전에 귤을 A급 B급으로 나눠야 했고, 실수하지 말아야 했다. 나는 꽤 진지한 얼굴로 그 일들을 했다. 그날 해야 할 일은 그날 끝내야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눈치 챌 수밖에 없던 큰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쁘게 단장한 귤은 남동생 이름이 찍힌 콘테나에 옮겨져 선과장으로 간다. 다른 집 귤과 구분해야 하므로 콘테나마다 이름이 있는 것이다. 선과장에서는 크기별로 귤을 나눈다. 아버지가 기계 위에 귤을 부어놓으면 우리는 서서 흠집이 나거나 썩은 귤이 들어갔는지 다시 살핀다. 밤은 된 지 오래되었지만 선과장의 불빛은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
마을 선과장은 몇 년 전 카페로 변신했다. 나는 아직 카페에 가보질 못했다. 우리 집도 귤 농사를 짓지 않게 된 지 오래됐다. 나는 제주도 사람들이 말하는 ‘육지 사람’이 되어 살고 있다. 가을이 되면 귤이 생각나 ‘육지 사람’처럼 마트에 나온 귤 한 봉지를 산다. 까기 쉬워서 먹기 편한 귤. 시를 쓰면서 책을 읽으면서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귤을 까먹는다. 까먹기 쉬운 귤을 창고와 선과장에서는 쉽게 먹지 못했다. 못생긴 귤만 골라 놓은 콘테나에 있는 귤을 먹었다. 잘생기고 윤기 나는 귤은 육지 어딘가로 간다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지명은 아무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다만 어느 곳에서 주스도 되고 모르는 사람 손에서 과즙과 향기를 내뿜었다고 생각하니 어른이 된 나는 문득 부모의 노고와 선과장의 불빛이 생각나 고요해진다.
어린 나는 바구니를 얼른 채워야 했으므로 귤을 사랑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을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귤이 그립다. 다 먹지 못해서 몇 개는 금세 썩어버리고 말 것을 알면서도 상자에 담긴 귤을 사게 되는 걸 보면 그때 맡은 냄새와 감촉, 귤나무가 내게 건넨 그늘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 것 같다.
저녁노을을 닮은 귤빛이 내 손바닥에 스며든다. 그래서 가을이다.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