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는 잊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리는 것

당신 다음엔 무엇 25

by 강윤미
사투리는 잊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리는 것.jpg 그림 metaphor





사투리를 쓸 일이 없다. 일부러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한 적은 없다. 그저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대학 입학 후부터 각자의 고향 사투리를 몸에 장착한 사람들과 섞여 지냈다. 하지만 나의 고향과 사투리는 외국에서 온 이방인처럼 그들에게 각별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프랑스 하면 ‘봉주르’ 일본을 떠올리면 ‘곤니치와’ 하는 것처럼 그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어설픈 제주도 사투리를 따라 했다. 그리고 현지어로 듣고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 특별하게 생각되는 지점이 때론 불편할 때가 있다. 그것 하나로 여러 사람에게 주목받는 것이 난감하고, 그것이 주목받을 만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냥 장소일 뿐이고, 그 장소의 특징일 뿐인데 왜 내가 태어난 곳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화젯거리가 되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내게 왜 사투리를 쓰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내가 그곳에서 왔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지방의 소도시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나는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한 학기에 한두 번 있던 향우회 모임에서 만나던 고향 사람들이 전부였다. 자연스럽게 사투리는 목구멍 깊숙이 들어가서 좀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대화가 완성된다. 나 혼자 이야기하는 기분에 빠질 필요 없지 않은가.


섬에서 올라온 엄마가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사투리로 목적지를 말하고, 마트에서 사투리로 채솟값을 묻는다. 엄마는 이곳이 잠깐 왔다 가는 곳이므로 사투리를 잊을 필요가 없다. 나는 사투리를 쓰고 있다는 인식조차 못 하는 엄마와, 알아듣지 못하지만 대충 알아들은 척하는 그들 가운데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곤 한다. 나조차 이미 이곳에 사는 사람이 되어 버린 지 오래라서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사투리가 낯설다. 그러면서 뭔가 들킨 것만 같다. 발가벗고 있는 나를 누군가 몰래 보고 있는 듯한 심정이 된다.


고향에 가면 내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동네 어른들을 마주칠 때가 있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내 얼굴 위로 그들의 입에서 출발한 사투리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나는 한쪽 귀로 그들의 물음을 들으면서 대답을 하고, 다른 쪽 귀로 잊고 있던 사투리를 발음하는 내 목소리를 느낀다. 사투리를 써야 하는 장소에서 사투리를 듣고 사투리로 대답하는 당연한 일. 마을을 벗어난 적 없는 사람처럼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흠칫 놀란다. 사투리를 쓰는 나의 억양과 말투를 찬찬히 곱씹는다.


사투리는 어디 숨어 있다가 불쑥 이렇게 내게 날아오는가.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낙하산을 탄 사투리가 내 몸 여기저기로 흩어져 다시 숨죽이기 시작했다.


쉿, 모른 척!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귤이 나에게 건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