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다음엔 무엇 32
아이의 입안에 ‘이’라는 것이 하나둘 싹처럼 돋아나던 때, 나는 이유식을 매일 만들어야 했었다. 초보 엄마여서 육아 서적을 자주 들여다보곤 했는데 책에는 모유에는 철분이 부족할 수 있어서 이유식에 늘 소고기를 넣어서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집 근처 정육점에 갔다. 정육점 주인은 이유식을 만들 거라 하니 싱싱한 소고기를 주겠다며, ‘오늘 잡았다’라는 말을 곁들였다.
‘오늘 잡았다’
‘오늘 잡았다’라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멈칫했다. 정육점 주인은 칼로 소고기를 다지면서도 ‘오늘 잡아서 싱싱하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싱싱한 고기를 내준다는 자부심과 손님에게 만족감을 준다는 기쁨이 서린 목소리였다. 조금 들뜬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또 멈칫거렸다.
‘오늘 잡았다’라는 말이 자꾸 목구멍에서 걸렸다.
어릴 때 살았던 슬레이트집 마당엔 동네 사람들이 가득하던 때가 많았다. 아버지는 동네 일이면 만사를 제치고 하는 성격이어서 아버지 또래 혹은 선후배쯤 되는 사람들이 늘 아버지 곁에 많았다. 마을 어르신 합동 세배식, 마을 체육대회 등 동네일의 중심에 아버지가 있었다.
우리 집 마당에서 돼지나 닭을 잡던 풍경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돼지와 닭을 잡는 일은 온종일 이루어진 것 같고 축제라면 축제이고 행사라면 행사일 수 있을,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그 ‘기승전결’의 풍경이 아무래도 내겐 조금 체한 기억으로 남은 것 같다.
하나의 생명이 고기가 되기까지의 그 과정.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면 좋았을 뻔했지만 나는 이미 보고 말았다.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남을 이야기가 될 줄 알았더라면 내 부모는 우리 삼 남매를 할머니 댁으로 보냈겠지만 그 시절,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규칙도 한계도 없는 것들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돼지와 닭의 숨. 동네 사람들 대신 느껴야 했던 죄책감과 두려움. 그렇다고 내가 채식주의자란 말은 아니다. 고기를 혐오한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불판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를 보면 설레는 내가 이상한 지점에서 주눅들 때가 있다는 것이 나 조차 당황스럽다. 남편 지인이 보내온 소고기 한 덩이. 핏빛의 그 고깃덩어리를 볼 때나 닭고기를 손질하다가 잘린 목을 볼 때, 그때 어떻게 이것을 음식으로 만들어야 하나 아득해지는 것이다. ‘날 것’의 이미지가 주는 불편함이 나를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남편에게 손질을 부탁하고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소고기가 접시 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는데도 괜히 떨어진 식욕을 탓하며 밥에 김을 싸서 허기를 채우고 만다. 남편은 상추를 몇 번이나 리필하면서 맛있게 고기를 싸 먹는 내가 이따금 보이는 이런 이중적인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다. 나도 나의 이런 행동이 우스꽝스럽다.
어찌 됐든 나는 ‘오늘 잡았다’라는 시를 쓰기도 하였으나 사적인 이야기가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해서 시라기보다는 짧은 산문에 가까워서 ‘소쉬르 정육점’이란 시로 제목도 바꾸고 시 내용도 많이 바꾸어서 발표했었다.
체한 기억은 체한 기억으로 남기고 배가 고프면 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는 걸로 내 식생활은 유지해야겠다.
유치한 결론에 이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