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다음엔 무엇 33
극장에 가서 영화 보기보단 집에서 새벽에 문 닫고 혼자 영화 보는 것을 즐긴다. 물론 큰 화면과 웅장한 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즐겨야 영화를 만든 사람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로서는 집에서 혼자 보는 편이 훨씬 영화에 흠뻑 빠지게 된다. 극장에서는 주변에 누가 앉을지 모를 일이라 간혹 숨소리가 거칠거나 작은 말소리를 자주 내는 사람들이 있다면 곤란해진다. 그 소음이 싫다기보단 옆에 누가 있다는 것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게 한다. 혼자 있어야 나는 슬픔 속에 깊이 빠져들고 기쁘면 소리칠 수 있다. 안타까울 때 먹먹해지는 가슴을 오래오래 느낄 수 있고 아름다운 장면에서는 오롯이 아름다움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몇 년 전에 개봉한 영화 <패터슨> 때문이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우연히 이 영화를 발견하곤 바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렁였다. 그때 나는 시를 쓰지 못한 지 오래되던 때였다. 첫째를 낳고 키우고 유치원에 입학할 때쯤 둘째가 태어났고 둘째를 키우다 돌아보니 누가 내 시간을 잡아먹은 것 마냥 시간이 흘러 있었다. 내가 시 한 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은 아무런 손상을 받지 않는다. 또한 내가 시 한 줄 쓴다고 누가 읽어줄 것이며 세상에 어떤 보탬이 되겠는가. 빵 하나를 먹고 빵에 대한 일기를 쓰는 삶이 좀 더 편하고 손쉬운 삶 아닐까. 그런 생각들로 나를 다독였다.
집에서 가까운 극장에는 그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극장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아이들과 남편을 남겨 두고 혼자 극장에 갔다.
<패터슨>은 ‘패터슨’이란 도시에 사는 ‘패터슨’이란 이름을 가진 버스 운전사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버스를 운전하면서 시를 쓴다. 쓴 시를 발표하지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지만 그는 시 쓰는 것 자체를 즐긴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으면서 시를 쓰고 아침에 시리얼을 먹으면서 시를 쓴다. 밥을 먹듯 세수를 하듯 시를 쓴다. 그에게 시 쓰는 것은 특별한 일상이 아니라 생활의 연장선인 것이다. 그래서 힘들이지 않고 시를 쓸 수 있다. 좋은 시를 쓰려고 애태우지 않는다.
그가 시를 쓰면 화면은 받아 적는다. 커다란 극장 화면 가득 그가 쓴 시들이 씌어 진다. 집에 있는 컴퓨터 화면으로는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를 감흥이 일렁였다. 보편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기엔 무리가 있는 소재인 ‘시’에 대한 영화였지만 극장에는 꽤 많은 사람이 있었고 양옆으로 빽빽하게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불쑥불쑥 쿵쿵거렸다.
아마 내가 시를 못 쓰고 있다는 죄책감과 불안을 너무 많이 쥐고 있던 때여서 그랬던 것 같다. 시 안 쓴다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나는 시를 쓰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밤낮으로 아이들이 울고 떼쓰고 밥을 챙겨줘야 하며 감기를 걱정해야 해서 마음에 시를 위한 자리를 남겨 두지 못했다. 그것이 나의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시가 일찌감치 포기하고 나란 인간을 피해 도망쳐버린 것 같았다. 지극히 현실적인 육아와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시 쓰기에 대한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그런데 영화 속 ‘패터슨’이란 인물은 폼 잡지 않았다. 시 쓰는 것이 특별하다고 내세우지 않으며 강박을 갖지 않고도 시를 쓸 수 있었다. 무겁게 쥐고 있던 마음에서 비로소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힘들이지 않고 느긋한 마음을 품고 있어도 시를 쓸 수 있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시를 다시 쓸 수 있었다. 빵을 먹고 빵에 대한 일기를 쓰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시 속에 빵 먹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용기를 얻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을 모델로 한 그림책 <에밀리>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시가 무엇이냐고 묻는 아이에게 아빠가 말한다.
“엄마가 연주하는 걸 들어 보렴. 엄마는 한 작품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데, 가끔은 요술 같은 일이 일어나서 음악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진단다. 그게 네 몸을 오싹하게 만들지. 그걸 설명할 수는 없어. 그건 정말, 신비로운 일이거든. 그런 일을 말이 할 때, 그걸 시라고 한단다.”
시는 신비로운 힘을 가졌다. 그래서 아빠의 말처럼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시를 쓰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신비로운 힘을 다시 믿기로 했다. 만지고 쓰다듬으면 마법 같은 일을 일어나게 해주는 영롱한 푸른빛 구슬을 누가 내게 준다면, 나는 그 구슬을 ‘시’라는 주머니 속에 담고 가만가만 들여다볼 것이다. 구슬 속에 비친 나를 훔쳐 오래오래 시를 쓸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