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저쪽에서 흘러나와
이쪽으로 숨어들었다

당신 다음엔 무엇 34

by 강윤미
음악은 저쪽에서 흘러나와 이쪽으로 숨어들었다.jpg 그림 metaphor




학생회관에 갈 때마다 그곳이 궁금했다.


대학 시절, 문구용품이나 책을 사러 가거나 동아리방에 가기 위해 매일 학생회관에 가다시피 했다. 부모님이 보내 주신 용돈을 인출하거나 허기를 채우기 위해, 혹은 기차표를 끊기 위해서라도 학생회관에 가야 했다.


1층 복도에 작은 극장 문 같이 생긴 빨간 문을 늘 지나쳐야 했다. 어느 날 용기를 내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많은 의자가 강의실처럼 모여 있었고 입구 오른쪽에 작은 라디오 부스 같이 생긴 곳이 있었다. 라디오 부스같이 생긴 작은 방의 책장에는 음반들이 가득했고 그곳에 앉은 누군가가 음악을 틀어주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었던 것이다.


의자 하나에 우연히 앉게 된 그 날부터 나는 학생회관에 갈 때마다 그곳에 자주 들렀다. 늘 한산했던 그곳의 의자 하나에 앉아 리포트도 쓰고 소설을 읽기도 하고 다음 강의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때까지 나는 클래식 공연장에 가본 적이 없었고 클래식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었다.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우아하지만 지루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 음악 선생님이 음악책에 나오는 음악을 잠깐잠깐 들려줬던 게 전부였다. 그땐 그것이 좋은 줄 몰랐었다. 음악 선생님의 지나치게 낮은 목소리가 거슬려서 친구들과 늘 목소리에 관한 험담을 늘어뜨리곤 했다.

어느 날, 내 두 귀를 돌아 몸 전체를 관통하는 음악을 들었다. 나는 그 음악의 정체를 묻기 위해 상자 같은 유리문을 두드렸다. 헨델의 ‘울게 하소서’라고 했다.


헨델의 울게 하소서. 울게 하소서……. 수첩에 메모해 두었다.

영화 <파리넬리>를 보았다. 영화 속 장면은 잠시 머물다 내 곁을 떠나갔지만, 음악은 피부에 붙은 솜털처럼 한참을 내 곁을 서성거렸다. 작은 부스에서 음악을 틀어주는 그들은 내가 이 모든 음악을 미처 알기 전에 이미 충분히 경험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동아리에 들어갔을까. 클래식 음악을 유년에 접해봤을 그들의 취향이 부럽기까지 했다. 경험을 해야 취향이 생기고 취향이 생겨야 자신을 알게 된다. 자신을 알고 있어야 행동을 하게 된다. 그들은 일찌감치 클래식 음악을 접했을 테고 취향이 생겼고 클래식 동아리에 가입했을 것이다.


투명한 유리 벽 안에 있는 그들의 취향과 감성은 내가 여태 먹어보지 못한 음식 같은 것이었다. 유럽의 어느 작은 섬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 같은 것. 그곳에 갈만한 형편이 되어야 하고 그곳에 가면 그것이 있다는 정보를 알아야 먹을 수 있는 것.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의 악보에 있는 ‘울게 하소서’. 그렇다. 피아노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고도 접해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하고 대중적인 멜로디였던 것이다. 피아노학원이 없던 곳에서 자란 나는 클래식이라는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세상을 휘감고 흘러왔다는 사실을 모른 채 유년을 지나쳐버린 것이다.

오래전부터 생겨난 취향이었다면 나는 문을 두드려 “저도 가입하고 싶어요.” 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부스 너머에서 음반 하나를 꺼내 갈아 틀던 그들의 손과 시선은 내가 닿을 수 없던 무지개 같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딴 세상에서 불쑥 생겨난 사람들 같기만 했다.


둘째가 일곱 살이던 작년에 집 근처에서 바이올린을 레슨 한다는 광고를 발견했다. 바이올린을 꼭 시키려던 것보다 유치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한 아이가 내내 걸렸던 차에 아이와 함께 선생님을 만나 보았다. 아이는 작은 몸에 어울리는 귀여운 바이올린을 흥미롭게 만져보고 소리 내 보았다. 아이는 일주일에 두 번 가는 레슨 시간을 즐겁게 기다렸다. 어느 날 선생님이 클래식 음악가들에 대한 스티커 북을 준비해 오셨다. 수업이 끝난 어느 날엔 “엄마, 비발디는 바로크래.” 또 어느 날엔 “쇼팽의 별명은 피아노의 시인이야!” 그리고 어떤 날엔 “바흐의 진짜 이름이 뭔 줄 알아? 요한 세바스찬 바흐야!” 했다.


아이는 바이올린을 켜는 일보다 스티커를 붙이고 음악가의 얼굴에 눈코입을 그리고 음악가의 별명을 알아맞히는 일을 더 흥미로워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의 작은 입에서 ‘후기 낭만주의’ ‘헝가리 무곡’이란 말들이 흘러나오는 광경을 놓치기 싫어 아이의 얼굴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이런 것들을 내뱉을 줄 아는 여덟 살, 만 6세의 아이의 일상이란 얼마나 우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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