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의 피렌체

당신 다음엔 무엇 35

by 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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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기억은 그곳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이가 기억하는 최초의 공간은 그곳이다.

신혼여행 때 처음으로 유럽에 갔다. 유럽에 대한 동경을 특별히 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마침 문학상 상금이 있어 먼 곳을 갈 여력이 생겼다. 즉흥적으로 텔레비전이나 영화 속에서 자주 봤던 에펠탑이나 콜로세움 같은 곳을 떠올렸다. 프랑스 4일, 이탈리아 4일 이렇게 8박 10일 일정이었다. 그때 갔던 곳 중에서 내 마음에 가장 오래 기억되는 곳은 이탈리아 피렌체였다. 딱 하루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두오모 성당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의 기억과 골목골목을 누비며 벽돌 건물들과 조각들, 그곳에 박힌 상징과 무늬를 봤던 감정이 깊게 박혔다. 수많은 이야기를 감추고 있을 시간의 겹침이 황홀하게 했다. 르네상스의 발상지라는 사실이나 영화<전망 좋은 방>의 배경이 된 장소이자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이란 사실을 다 버리고도 이곳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생전 처음 경험해본 생경함이자 아늑함이었다. ‘먼 곳에의 동경’을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 ‘페른베(Fernweh)’. 나에게 피렌체는 그런 곳이다.

큰아이가 태어나고 유럽 여행을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가지 않으면 풍선 같은 기회가 허공으로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세 살 아이와 유럽 여행을 가는 것이 가능할까?’ 보다 ‘지금 아니면 영원히 못 갈 것 같아.’라는 마음이 앞섰고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런던 올림픽이 한참이던 그 뜨거운 여름에 우리는 31개월이 된 아이와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와 같이 가는 여행이었으므로 최소한의 이동을 고려해서 이탈리아만 선택했다. 14박 16일 일정 중에 피렌체에서만 5일을 있기로 했다. 로마, 베니스, 밀라노는 호텔을 예약했지만 피렌체에서는 방을 예약했다. 방과 부엌이 있고 화장실이 붙어 있는 원룸 형태의 방이었다. 주방이 있어서 아이에게 줄 간단한 음식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또한, 잠시지만 현지인처럼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로마의 박물관에서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과 진지한 표정으로 조각들을 들여다봤고 조각들 사이에서 익숙한 과일이나 동물을 발견할 때면 조금 더 오래 빠져들었다. 더위 탓에 목은 수시로 말랐고 아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이탈리아에서 복숭아 아이스티를 맛보았다. 여행 내내 마셨다. 물론 젤라토가 유명하다는 집은 다 찾아가서 먹었다.


한국에서부터 보르게세 미술관을 예약해 놓고 보르게세 공원으로 향했다. 예약 시간을 기다리며 숲의 바닥에 누워 나무들 사이에서 흐르는 빛을 눈에 담기도 하고 낮잠도 잤다. 숲에서 아이는 아이인 것을 잊고 온전히 아이처럼 웃었다. 우리 세 식구는 그렇게 풍경이 되었다. 가족이 되었다.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에 있던 비둘기들을 아이는 유난히 좋아했다. 비둘기들이 그렇게나 많이 모여 있는 풍경은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거였는데, 비둘기가 가까이 가도 도망치지 않고 아이의 작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베네치아에서 배를 타고 갔던 부라노 섬은 파스텔 톤의 건물들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아이는 세 살이라는 나이를 알록달록 빛깔로 채워 나갔다. 우리는 섬 스케치북에 서툴지만 자유로운 발자국을 남겼다. 햇빛이 스케치북을 비추면 섬은 그날 저녁까지 유효한 한 점의 그림이 되었다.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서 허락된 15분 동안 우리는 벽에 새겨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아이 덕분에 스치듯 흘려보내야 했지만, 성당 앞에서 오후 내내 웃고 떠들고 사진 찍을 수 있었다. 밀라노에서 기차를 타고 스위스와 가까운 코모 호수도 갔다. 한적한 호수 풍경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고 부르나테 산 정상에 올라가서 본 풍경은 아름다웠다. 다시 밀라노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아이는 역에 있던 작은 가게에 들어가자고 재촉했다. 막상 들어가니 마땅히 살 것이 없었던지 아이의 손은 아무것도 집지 못한 채 시선만 왔다 갔다 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내가 빨간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인형을 건네주자 아이의 손은 황급히 받아들었다. 스위치를 왼쪽으로 당기면 불이 켜지는 작은 오너먼트 비슷한 거였다. 그 인형이 아직 우리 집 책장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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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출발한 기차가 피렌체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도 타본 적 없는 기차를 이탈리아에서 처음 타본 아이. 아이는 과자를 먹으면서 창밖 풍경도 보고 스티커 북도 하면서 꽤 그 시간을 즐겼다.


414개의 좁고 어두운 계단을 따라 올라가 조토의 종탑에 이르렀고 빛과 그림자에 따라 달라지는, 붉고 붉지 않은 지붕들의 행렬을 목격했다. 행렬의 가운데에 두오모가 솟아 있었다. 우리 셋은 피렌체의 골목골목을 헤매고 싶어서 지도를 백지처럼 갖고 다녔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볼 때는 “엄마, 조개 위에 여자가 올라갔어!” 하며 탄성을 질러서 얼마나 우리 부부를 당황하게 했던가.

피렌체의 서점에서 그림책과 어린 왕자 책을 샀다. 장난감 가게에 가서 피노키오 인형을 사줬더니 신난 아이는 작은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꼭 껴안고 두 팔을 흔들며 걷는다. 길을 지나가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동양의 여자아이가 룰루랄라 흥얼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귀여운 듯 한참을 바라보고 미소를 보인다. 한 도시에 며칠이라도 머물 수 있는 행운이 있다는 것은 그곳의 유명한 건축물과 관광지뿐 아니라 갑작스레 만나는 장소를 지나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 도시의 조금 깊은 곳까지 사랑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피렌체에서 버스를 타고 피렌체 근교의 언덕 위 마을 ‘피에솔레’에도 다녀왔다. 관광객이 거의 없어서 풍경 그대로의 얌전함과 솔직함을 내뿜는 곳이었다. 그곳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앞을 바라보면 바다에 뜬 집어등처럼 저 멀리 꽃의 도시 피렌체의 정경이 펼쳐진다. 높이 솟아 있는 두오모와 조토의 종탑이 보이고 그것들을 안고 있는 산과 하늘, 바람과 계절이 펼쳐져 있다. 숲에서 나와 숲을 바라보는 일처럼 피렌체에서 나와 피렌체를 응시하는 경험은 내가 피렌체를 사랑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해줬다. 분명 땡볕이 흘러내리는 언덕을 우리는 아이와 땀을 흘리며 오르고 내려왔음에도 시간이 흐른 지금은 고단했던 기억은 사라지고 잡을 수 없는 찬란한 풍경 하나만 손바닥에 스치듯 쥐고 있다.


피렌체의 작은 방에 있던 작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만화를 뜻도 모르면서 흥미롭게 봤던 아이. 근처 시장에서 사 온 토마토를 씻어 먹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 낯선 곳의 익숙한 우리의 방을 오래 기억하려 뒹굴뒹굴했다.


유치원에 다니던 때쯤 아이는 “엄마, 우리 그곳에서 여기로 이사 왔잖아.” 했다. 나는 아이가 태어나고 한 번도 이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아이의 말이 시작된 출발점에 대해 오래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아이는 그 작은 방의 사소한 풍경을 내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의 기억 속 최초의 방은 산후조리원의 작은 침대도, 조리원에서 나와 처음 왔던 아파트의 방도 아닌 피렌체의 그곳이었다. 시차에 적응 못 한 아이는 오후 5시쯤 되어서 그 작은 방으로 돌아갈 때쯤이 되면 졸려서 늘 울고 보챘다. 좁은 계단을 올라 2층의 방으로 올라가는 동안 남편과 나는 우는 아이를 달래며 허둥지둥 방 열쇠를 열어야 했다.

번갈아 가며 힙 시트에 아이를 안고 다니며 뜨거운 여름의 보름 동안 우리는 이탈리아에 있었다. 뜨거운 태양 빛에 발가락까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폭염에 아이를 데리고 다닌 고단함으로 입안에서 통증이 돋아났다. 가장 오래, 가장 무겁게 걸었던 여름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가장 행복한 여름이었다는 사실을 매일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나면 깨닫는다. 소스라치게 그 행복이 그리워진다.


아이는 이탈리아에 다녀온 뒤 ‘얼룩’이라는 발음을 또박또박 발음하기 시작했다. 그냥 ‘말’이 아닌 ‘얼룩말’이 된 것이다. 아이 덕분에 말은 ‘얼룩’의 세계로 들어섰고 아이는 얼룩말이 이끄는 유년을 잘 따라다니고 있다. 꼭 이탈리아에 다녀와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 ‘얼룩’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가 아이에게 온 것이다.


아이와 함께 피렌체의 그 방에 다시 갈 수 있다면, 보르게세 공원의 나무에 기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울 것 같아 벌써 눈물이 고인다. 피렌체에 있던 세 살 아이의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해내기 어렵다. 그러나 세 살의 아이를 안고 흘러 온 강물의 시간이 한 겹 한 겹 쌓여 아이가 내 어깨만큼 자라는 기적이 일어났다. 독일 시인 헤르만 헤세는 <북쪽에서>라는 시에서 피렌체를 ‘두고 온 행복’이라고 표현했다. 지금 식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의 얼굴 속에 피렌체의 안부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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