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네 집

당신 다음엔 무엇 40

by 강윤미
윤미네 집1.jpg 그림 metaphor






『윤미네 집』이란 사진집이 있다.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아버지가 남긴 딸의 성장기다. 딸은 자라 시집을 가고, 부부는 젊은 부부에서 늙은 부부가 되는 인생의 여행.

어느 날 뉴스에서 이 사진집을 소개해주었고 나는 내 이름과 같은 그 여자아이의 삶이 궁금해 사진집을 구매했다. 멋진 형용사를 붙이는 대신 그냥 ‘윤미네 집’이라고 붙인 책 이름이 좋았다.

사진을 찍으면 현상해놓고 앨범에 꽂아두고 잘 정리해놓는 편이었는데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새삼 어려운 일이 되었다.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넘어가는 것까진 괜찮았는데, 이젠 누구나 어디서나 카메라를 들고 있는 시대 아닌가. 아이를 임신해서 배가 불러오는 시간의 시간, 아이가 태어나 뒤집기를 하고 기어 다니고 걷는 순간. 아무것도 없던 입에서 이 하나가 뾰족 돋아난 순간. 분명 매일 곁에 꼼짝 않고 붙어 있지만 내가 잠시 한눈판 사이에 일어나는, 아이가 아이가 되어가는 비밀스러운 찰나.

빨대 컵을 처음 아이의 손에 쥐여 주던 날, 아이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몰라 거꾸로 돌려보기도 하고 흔들어보기도 했다. 내가 다른 컵에 빨대를 꽂고 물을 마시는 시늉을 몇 번이고 해 보이자 아이는 곧 따라 했다. 기다랗고 투명한 빨대를 꽉 채우며 올라가는 물줄기를 처음 봤을 때의 환호. 아이의 목까지 넘어가던 물의 감흥!


아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어떤 일에 쉽게 비유하지 못할 만큼 경이롭다. 그 순간순간들을 나도 남편도 찍고 찍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에게 똑같은 하루는 없기 때문에 똑같은 사진은 없다. 한두 달만 지나면 저장 공간이 꽉 찼다는 메시지가 휴대폰에서 울린다. 컴퓨터에 사진을 옮기고 휴대폰에 찍힌 사진들을 삭제한다. 다운받은 사진들은 연도별로 폴더 속에 보관해 놓고 모아놓은 폴더들은 다시 외장하드에 옮긴다. 갑작스러운 컴퓨터 사고로 사진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수고롭지만, 이 과정을 철저하게 반복한다.

잘 나온 사진을 선별해서 현상해놓았던 때와는 달리 너무 많은 사진이 컴퓨터와 휴대폰에 꽉 차 있는 지금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현상해야 할지 난감해서 시도조차 못 하고 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땐 새벽에도 일어나 모유 수유를 해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야 했으므로 늘 피곤했고 시간이 나질 않았다. 아이들이 조금 자란 지금은 모유 수유와 기저귀는 작별했지만, 사진의 양은 조금 과장해서 만리장성을 따라갈 만큼 많아서 정말 엄두가 나질 않는다.


큰아이가 다섯 살 때 사진을 사진집으로 만들어주는 온라인 사이트를 알게 됐다. 내가 고른 사진을 내 마음대로 구성하고 글도 써넣을 수 있다. 표지의 색과 제목, 사진집의 구성과 쪽수까지 모든 것을 내가 정해서 완성하면 사이트에서 사진집을 만들어 보내준다. 그때 나도 큰아이의 이름을 따서 ‘metaphor의 집’이라고 했다. 만삭일 때부터 아이가 태어나 첫돌을 맞을 때까지의 기록이다.


책 한 권을 만들어 놓으니 컴퓨터에 폴더별로 보관만 하던 것과는 색다른 친밀감과 애정이 생겼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둘째 아이의 모유 수유와 기저귀를 핑계로 손 못 댔다. 사진집에 들어갈 수 있는 사진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수많은 사진 중에 가장 빛나는 사진을 찾고 판단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보통의 체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윤미네 집』으로 돌아온다. 내가 그 사진집에 감명 받은 것은 투박하고 소박한 아버지의 감성이다. 어지러운 것을 일부러 치우고, 멋진 옷을 차려입고 좋은 배경을 찾아 찍은 사진이 아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교복 입은 모습, 뒤에서 엄마가 머리 묶어주는 장면, 둥그런 밥상에 앉아 밥을 먹는 풍경 등 그저 평범한 생활의 장면이라 좋다. 뭘 더 붙이고 뭘 빼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아버지의 마음. 사진기가 귀한 시절, 사진을 찍는 아버지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 아버지가 찍은 사진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른이 된 딸이 애인과 데이트하는 장면을 멀리서 찍은 사진이다. 부모는 아이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마련인데, 딸아이의 애인까지 품어주는 아버지의 마음이란 어떤 것을 떠올려야 가늠할 수 있을까.


사진 찍는 일이 유난히 어색하고 어려운 나에게 웨딩 촬영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숙제 같은 거였는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잘 웃었고 행복하다는 표정을 꾸준히 지을 수 있었다. 사진사의 난감한 요구에도 처음 입어본 드레스와 신부 화장 덕분이었는지 나는 나를 잊고 그럭저럭 하루를 잘 넘길 수 있었다. 결혼식을 결정하는 순간 따라오는 필수 옵션 같은 웨딩 촬영.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의식과 의심 없이 해냈다. 나중에 안 보게 될지라도 없으면 후회하게 된다는 웨딩 앨범.


정말 내게 웨딩 촬영 사진이 없었더라면 길고 지루한 후회를 하고 말았을까. 이미 촬영을 해버린 터라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 선택을 다시 선택할 만큼 잘 차려놓은 어색한 순간이 주는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흔히 한다는 50일 기념사진, 100일 사진, 첫 돌 사진을 나는 사진관에서 찍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뒤집기를 하던 순간, 이유식을 먹다 숟가락을 들고 잠든 얼굴, 첫돌 기념으로 샀던 한복을 입혔더니 불편하고 낯설어서 찡그리며 울던 작은 감정을 나는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가스레인지가 배경으로 나오고 물티슈와 기저귀가 널브러져 있는 거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이유식을 먹다 흘린 턱받이에 묻은 얼룩이 그대로 보이는 그런 사진들. 엄마라서 찍을 수 있고, 엄마니깐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진. 가장 근사한 옷을 입고, 멋진 조명과 배경 밑에서 처음 보는 사진사에게는 보일 수 없는 감정과 표정. 그래서 그 사진들이 지나고 나서 보니 눈물 나게 우습고 웃기면서 눈물이 난다.


사진을 찍고 있던 그 순간의 나는 사진 속에 없지만, 그때 내가 아이를 키우며 내가 겪은 어른 성장통은 고스란히 사각형 밖에 남아 있다. 나도 정말 어른이 되어 가고 있던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린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