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물질

당신 다음엔 무엇 42

by 강윤미
예술이라는 물질.jpg 그림 metaphor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나온다.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사진작가 JR은 사진을 찍고 현상할 수 있는 사진관 자동차를 타고 프랑스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난다. 노동자의 얼굴과 노동자의 아내와 뿔을 잃어버린 염소까지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찍고 즉석에서 현상하고 벽에 건다. 벽은 액자다. 거리가 사진관이다.


어떤 피아니스트는 트레일러를 개조해서 피아노를 싣고 연주 여행을 다녔다. 피아노를 태운 트레일러는 배를 타고 제주도에 이르렀다. 그는 물질을 마치고 나온 해녀 곁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다. 해녀들은 피아노 연주를 처음 들었다. 생전 처음 보는 피아니스트와 처음 보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손가락에서 돋아나는 음악. 파도 같이 요동치는 음악. 해녀들의 귀 곁에 파도 보다 음악이 더 가까웠던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제주 바다에는 흰 물살과 푸른 물살이 있고 그 중간쯤에 에메랄드빛 속살이 있다. 음악이 그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파도는 파도인 것을 잊고 춤을 춘다. 음악이라는 물이 흐른다.

다른 피아니스트는 유명한 피아노 제조 회사의 노동자들에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준다. 각자 맡은 일을 매일 반복하는 그들의 일과는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일처럼 피아노라는 사물의 일부분에 갇혀 있다. 개인과 개인의 일상이 합해져 피아노가 완성되고 음악이 형성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 리 없는 것이다. 피아노를 만들고 있지만, 피아노와 가장 멀리 있는 피아노 공장의 노동자. 피아니스트는 그들이 만든 피아노로 연주를 한다. 그들의 손은 예술의 탄생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은 몇백 년 전에 작곡되었다 하더라도 연주하는 지금의 순간, 현재의 곡이 된다. 연주하지 않으면 그저 종이에 불과하다. 사진은 늘 찍는 순간 현재지만 사진이 되는 순간 과거가 된다. 음악은 과거를 현재라고 우기며 늘 우리 곁에 머무르려고 하고, 사진은 현재를 품지만 과거에 빚지고 있다. 오로지 현재만 품고 있는 것은 아직 세상에 내놓지 않은 생각 같은 것일까.


세상에 내던져진 사진과 음악. 우리의 몸을 거쳐야 그것들은 예술적 감성을 지닌 물질이 된다. 사진관과 공연장에 갇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관통해서 새로운 이름을 얻은 새로운 존재로서의 예술도 있다. 감동이 아직 몸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예술은 장소를 잊고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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