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다음엔 무엇 46
자취하던 시절, 마트에 갔다가 와인이라는 것을 처음 샀다. 와인은 맑고 투명했다. 보랏빛이지만 보랏빛만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검은색도 있었고 붉은색도 있었다. 저녁 노을의 빛이랄까. 바다를 오래 들여다보면 건져낼 수 있는 색이랄까.
마트에 가게 되면 이따금 와인을 샀다. 어디서 왔으며 언제 만들어졌는지, 맛의 강도는 어떤지보다 가격이 중요했던 자취생 시절. 저렴한 와인 하나를 사서 시를 쓸 때, 시를 쓰고 나서 홀가분하면서 마음이 따듯해졌을 때, 시를 쓰지 못할 때, 시를 쓰지 못해서 괴로울 때 한 모금씩 마셨다.
유리잔은 동그란 거울 같다. 보랏빛 와인을 조금 따랐을 때 나는 평소 입지 못하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것처럼 조금 새초롬해진다. 유리는 얇고 투명해서 조금만 잘못 다루면 깨질 것만 같다. 조금만 서툴러도 토라질 것 같다.
코르크 마개는 또 어떠한가. 와인 오프너로 아무리 해도 쉽게 열리지 않는 것이 와인의 세계였다. 요령이 없었고 힘이 모자랐다. 힘이 너무 셌다. 코르크 마개는 꼼짝하지 않고 조금씩 부서지기만 했다. 부서지고 부서졌다. 마개의 잔해들이 톱밥처럼 바닥에 흩어진다. 오프너가 두 팔을 위로 활짝 펼치면 코르크 마개는 불쑥 병에서 빠져나온다. 나도 두 팔을 들어 외친다. 만세!
코르크 마개에 그려진 포도송이 그림이 정겨워서 모으기도 했다. 가벼우면서 손에 닿는 촉감이 좋았다. 시집을 넣어 둔 책장 앞에 코르크 마개를 쌓아 놓았다. 코르크 마개의 반쯤은 어둡다. 와인병 속에 오랫동안 잠겨 있던 시간이다. 그 시간을 맡으면 와인의 냄새가 난다. 끝 냄새. 숙성을 마치고 병 속에 담기는 끝 시간. 그리고 시작의 시간. 누군가 코르크 마개를 열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와인의 적요로운 시간.
아이를 낳고 십여 년 동안이나 와인을 잊고 지냈다. 와인 잔은 먼지를 뒤집어쓰기 시작했고 먼지가 잔뜩 묻은 와인 잔을 쓸어 낼 용기가 나질 않았다. 시작하지 않을 거라면 마음을 주지 말아야겠다고, 모른 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와인의 세계는 내 손에 닿지 않을 만큼 멀었고 육아의 세계가 아코디언의 주름처럼 내 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지인으로부터 와인을 선물 받았다. 어떤 선물은 취향에 맞지 않고 어떤 선물은 시간과 장소가 허락하지 않아 쓰기 곤란하며, 어떤 선물은 부담스럽기도 한데 와인이라는 선물은 그냥 좋다. 그리하여 먼지 묻은 와인 잔을 몇 번이고 씻었다. 유리의 민낯이 드러났다. 아이들과 남편이 자고 난 늦은 밤에 영화를 보며 와인을 마신다. 아, 좋다. 나 혼자 조금 훌쩍이기도 하고 들썩거릴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좋구나.
아이들이 태어난 해의 와인을 사 두었다. 라벨지의 그림과 디자인에서 오는 느낌으로 골랐다.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같이 마셔야겠다는 환상을 품고 있다. 타임캡슐을 땅에 묻어 놓는 것과 비슷한 발상이라고 해야 할까. 그 짧지만 강렬한 시간을 생각하면 내가 버틸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잠든 밤, 혼자 마시는 와인은 조금 적막하다. 적막한 내 얼굴이 투명한 와인 잔에 비칠까 두렵다. 와인과 나만 알기로 한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시간이 더디 흐른다. 내일 아침이 오지 않을 것처럼 오늘이 길다.
긴 땅의 모양을 가진 칠레에서 온 와인. 그곳에서 햇빛을 받으며 바람에 섞이며 자라나고 있을 포도송이를 생각한다. 포도송이가 어둠 속에서 숙성되고, 그 시간의 비례하여 또 먼 거리를 날아왔다. 내 방을 두드렸다.
포도송이의 시간을 사랑한다. 보랏빛의 액체로 다시 태어난 연도를 기억하고 쑥쑥 자라나는 시간. 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 동안 자라났을 포도송이 같은 아이들의 얼굴. 내가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을 때 나의 마음은 비로소 와인 잔에 담긴 와인처럼 아름답게 찰랑거리기 시작했다.
포도송이의 시간을 배우려 한다. 한곳에 오래 머물렀지만 투박하지 않고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우아하고 고매하면서 겸손한 포도송이의 시간을 배우려 한다. 포도알들이 모여 송이가 되는 일처럼 책상에 자주 앉는 일이 내가 ‘쓰는 사람’의 길에 가까워져 가는 것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